'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알쓸별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 등 TV 예능으로 친숙한 물리학자 김상욱과 천문학자 심채경. 두 과학자가 이번에는 서로를 향해 편지를 주고받았다. '우주의 천체를 탐구하는 천문학자는 원자 같은 일상을, 원자를 탐구하는 물리학자는 제법 큰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6개월간 이어진 교신은 <과학산문>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이 책은 과학을 설명하기보다 과학적 태도를 살아낸 기록이다. 국수 한 가닥의 1차원 구조,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무덤, 빨래방의 웅웅거림 같은 사소한 풍경에서 출발한 문장들은 어느새 기억과 죽음, 미신과 습관, 민주주의와 미술로 뻗어나간다. 정답을 서둘러 고르는 대신 '왜 그런가' 질문을 붙드는 태도, 그것이 이들이 말하는 과학이다.
두 사람의 결은 다르다. 김상욱은 과학사의 맥락을 열어젖히며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심채경은 하루와 마음의 결을 섬세히 길어 올린다. 서로의 차이는 보완이 되고 그 사이에서 사유의 폭은 넓어진다. 과학자라는 호칭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를 '상욱님'과 '채경님'이라 부르는 순간 과학은 다정한 얼굴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와 심채경 한국천문연구원 행성탐사센터장을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만났다.
▶ 이 책의 기획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영하 작가님이 뉴스레터 제안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심채경=작년 추석쯤에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 무렵에 이야기가 나와서 한 6개월 정도 연재했죠. 총 28편의 편지가 됐고요. 연재가 끝난 뒤에는 모아둔 글들을 다듬고 조금 더 보태서 책에 넣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시작하고 1년 만에 책이 나온 셈이죠.
▶ 연재에는 흔쾌히 응하셨나 봅니다.
심=저는 김상욱 교수님이랑 한다고 해서 바로 오케이 했고요.
김상욱=저도 심 박사님이랑 한다고 해서 오케이 했죠. 제가 '알쓸 시리즈' 찍으면서 제일 좋아했던 분들이 김영하, 심채경 선생님이었는데, 이번에 다 같이 엮이는 기회라서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분명히 바빠서 왜 이걸 했을까 하고 후회하겠지' 하면서도 일단은 해야겠다 싶었죠. (심=실제로 '내가 이걸 왜 했을까' 후회를 많이 하셨어요, 웃음) 재미는 있었지만, 다른 연재도 하고 있어서 정말 괴로운 순간이 많았어요. 그래도 책을 보니 모든 게 다 보상받은 것 같아요.
▶ 편지라는 형식으로 글을 주고받으신 셈인데, 이런 형식이 글 쓰는 과정이나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심=좀 더 즉흥적으로 쓰인 면이 있던 것 같아요. 편지다 보니 상대방 글을 받고 거기에 응답하면서 생각이 시작됐거든요. 그래서 혼자 쓸 때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글이 출발하기도 했죠. 또 주고받은 글이니까 제가 교정할 때 마음대로 고칠 수 없어서, 즉흥적으로 나온 부분을 그냥 두게 됐는데 그게 신선하고 생생한 경험이었어요.
김=저는 편지라고 했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편지처럼 쓰되 독자를 의식해야 한다'는 조건 속에서 작업한 거죠. 실제 편지라면 상대가 과학자니까 과학적 지식에 대해선 많은 부분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독자도 함께 읽으니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죠. 그런 부분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상대에게 쓰는 듯하다가 독자에게 말하듯 톤이 바뀌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오가야 했는데 그 균형 잡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 두 분이 모두 과학자인 만큼 과학의 시선이 글 곳곳에 투영돼 있는데, 그걸 풀어내는 방식은 확연히 달랐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심 박사님은 과학 '산문', 김 교수님은 '과학' 산문을 쓴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물리학자가 꿋꿋하고 냉철하게 과학 이야기를 하는 동안 천문학자는 매양 과학 밖에서 놀다가 해 질 녘에야 사부작사부작 과학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심채경)라고 책에 쓰기도 하셨어요.
심=맞아요. 아마 김 선생님과 제 스타일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지식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냥 제가 생각하는 방식, 그날 떠오른 생각 같은 걸 편지로 썼을 뿐이에요. 그래서 독자가 꼭 일반 독자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다른 사람들이 같이 보는 정도로 느껴졌죠. 물론 조금은 설명을 덧붙였지만, 애초에 지식 전달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어요. 사실 과학을 한다고 해도 연구 영역이 워낙 좁다 보니, 같은 부서 옆 팀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아요. 그런데 교수님은 늘 넓게 보시고, 심지어 미술이나 다른 분야까지 배우려고 하시잖아요. 그 태도가 제가 과학을 처음 좋아하게 됐을 때의 마음이었거든요. 저는 요즘 직장인 모드, 지식 노동자 모드로 과학을 하고 있다면, 교수님은 여전히 처음 과학을 시작했을 때의 호기심을 간직하고 계신다는 게 느껴져요. 그래서 덕분에 저도 다시 과학 애호가의 모드로 되돌아가곤 했습니다.
김=저는 말씀하신 대로 정말 편지를 주고받는 기분이었어요. 사실 저는 에세이를 잘 써본 경험이 없고, 주로 지식을 전달하는 글을 써왔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뭔가를 전달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죠. 그런데 편지 형식이다 보니 그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어요. 그래서 과학 지식 외에도 중간중간에는 제 사적인 얘기, 예전 경험 같은 것도 넣어봤습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특히 심 박사님이 자기 얘기를 편안하게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서, 글이 꼭 지식 전달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거든요. 글도 정말 잘 쓰시고, 특히 의태어나 의성어 같은 표현들이 너무 좋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 서로 호칭을 '님'이라고 하셔서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김=제가 첫 편지를 쓰면서 '아, 이건 편지니까 상대를 계속 호명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그런데 뭐라고 불러야 할지가 고민이더라고요. '심채경 박사님'은 너무 길고, '심 박사님'은 정이 없고, 촬영 현장처럼 '채경 쌤'이라고 하기엔 또 가벼운 느낌이고…. 그래서 호칭을 합의할 필요가 있었죠. 저는 호칭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님'이 제일 자연스럽겠다 싶었어요.
심=저도 재밌었어요. 사실 이름을 직접 불릴 일이 거의 없거든요. 직업상 주변에 다 박사 학위자들뿐이라 늘 '심 박사'로만 불려요. 직급이나 호칭이 붙는 게 당연한데, 그냥 제 이름만 불리는 건 편지가 아니면 잘 없죠. 그래서 오히려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 가장 재미있었던 상대방의 글이 뭐였나요?
심=저는 김상욱 교수님이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물리학자의 무덤'을 방문한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거든요. 교수님은 늘 현실적이고 철저한 유물론자인데, 갑자기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 등 돌아가신 분의 무덤을 찾아, 그들이 우주에 남긴 물리적 흔적을 간직한 채 유해가 땅에 섞여 남아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저는 과학자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정말 재미있어요. 사실 제가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이유도, 이렇게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아서거든요. 차갑고 냉철할 것 같은 분들이 흙 속의 아인슈타인을 느껴보려 한다는 식의 얘기를 하면, 제가 생각했던 틀이 깨지면서 너무 흥미롭습니다.
김=근데 사실 그 글이 나온 계기는 토정비결 때문이었어요. 심 박사님이 매년 토정비결을 본다는 대목이 딱 나오는데, 저는 그런 걸 절대 안 하거든요. 그 순간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죠.
▶ 과학자들은 점 같은 걸 전혀 안 보고 싫어할 것 같았는데, 심 박사님께서 매년 꼭 토정비결을 본다고 하셔서 뜻밖이었습니다. 반면 김 교수님은 태어난 날짜와 시간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행위에 대해 "물리학은 물체의 초기조건으로 운동 궤적을 찾지만, 원자 하나의 궤적도 예측하기 힘든데 수많은 원자로 이뤄진 인간의 미래를 초기조건과 시간만으로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나"라며 반론을 내놓으셨죠. 불확실성이 큰 시대라 그런지 젊은 세대 사이에서 MBTI를 넘어 사주까지 인기라고 하던데요.
김=저는 MBTI도 안 하는 사람이라,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 믿는 건가?' 돌아보게 됐어요. 그러다 여름에 갔던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사원이 생각났죠.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글을 쓴 건데, 저한테는 그게 오히려 과학적인 경험이었어요. 영혼이 없다면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으니까, 남아 있는 물질이 더 의미 있는 거 아닌가. 결국 남은 시체가 더 중요하지 않나, 이런 결론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비과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끝까지 밀어붙인 과학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심=저도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과학적이라서 웃겼던 거죠. 천문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주류에서 벗어난 길이라, 좀 이상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에요. 그래서 평소엔 성실하고 모범적이던 과학자들이 기존 틀에서 벗어나 다른 얘기를 할 때, 저는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점을 보는 건 아마 자기 선택에 확신을 얻고 싶어서일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해도 되겠구나'라는 자신감, 혹은 누군가가 허락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죠. 불확실한 시대에, '나는 원래 이걸 하면 잘한다, 나는 이걸 해야 한다'는 식의 가이드를 받고 싶은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워낙 효율성, 쓸모 같은 걸 요구하다 보니 불안해서 더 MBTI, 혈액형, 사주 같은 데 기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편지글은 빨래방, 국수 같은 일상의 풍경에서 출발하곤 합니다. 과학자들이 일상에서 과학적 태도를 끌어내는 건 과학 문외한 입장에서 늘 흥미롭던데요. 김 교수님께서는 “사고를 지배하는 물리학이 자연을 이해하는 틀만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틀로도 작동하는 것 같다"고 쓰셨죠. 특히 국수를 이야기하시면서, 국수의 역사부터 1차원적 기하학 구조를 짚고, 차원이 낮아질수록 주변과 소통하는 능력이 늘어난다고 인간적으로(?) 풀어내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국수를 드시면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김=그럴 리가 있나요. 평소에는 그냥 맛있게 먹어야죠(웃음). 다만 글을 써야 할 땐 앉아서 브레인스토밍하니까, 모든 가능성을 다 떠올리며 '이건 넣어볼까, 저건 어떨까' 하게 되는 거죠. 면을 먹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저는 면을 보면 자연스럽게 1차원이 떠오르거든요. 다 그렇지 않나요?
▶ 다 그렇진 않을 것 같은데요(웃음). 과학을 깊이 배우면 소위 '문과형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저는 꼭 과학을 깊이 배워야만 그런 게 생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만 관심을 갖고 배우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죠. 국수에서 출발했다가 이쑤시개나 면봉 같은 걸 보면서도 '이건 1차원일까?' 하고 생각이 확장될 수 있고요. 과학은 사실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해서 시작은 쉽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문과·이과를 자꾸 나누는 게 밈처럼 돼 있어서, 오히려 그런 구분이 마음의 벽을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이 '과학책'으로 분류되는 건 조금 반대예요. 그냥 일상에 원래 과학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주위에 별난 과학자들이 워낙 많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저희는 오히려 꽤 사회화된 편이죠(웃음).
▶ 물리학과 천문학의 학문적 차이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도 궁금한데요. 책에서 언급하셨듯 물리학은 세상을 잘게 쪼개 이해하려 하고, 천문학은 멀리서 큰 우주를 본다는 특징이 있잖아요. 이런 학문적 특성이 인간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차이를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김=그건 사실 너무 단순화한 말이에요. 물리학에도 거시적으로 보는 분야가 있고, 천문학에도 미시적인 이론을 다루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국 기초과학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사회적 응용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대부분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를 시작하죠. 물론 반도체 물리처럼 응용과 맞닿아 있는 분야도 있지만요. 그래서 일상과 직접 연결 짓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연구비 설명할 때 '이게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느냐'를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과학자는 자기 호기심 때문에 연구를 하는 거고, 그 점에서 물리학·천문학·생물학·화학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심=저도 동의해요. 좁게는 과학자, 넓게는 연구자, 거의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리학은 저희랑 거의 같은 분야예요. 교수님 연구실 선후배들이나 제 동료들도 다 같이 협업하고 있고, 실제로는 굉장히 가까운 사이죠. 이름만 물리학자, 천문학자일 뿐,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 김상욱 교수님은 스스로 '다정한 물리학자'로 불리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아마도 방송을 통해 교수님의 설명을 들어본 시청자라면 물리학을 그래도 조금은 다정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책에서 그런 교수님의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무신론자지만 신이 없다는 증거를 보며 기뻐하는 사람은 아니길 바란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김=사실 '다정하게 살자'고 다짐한 적은 별로 없어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차갑다고도 하고요. '다정한 물리학자'라는 표현은 유시민 선생님이 알쓸신잡에서 "물리학을 이렇게 배웠다면 더 다정하게 느꼈을 텐데"라고 하신 말에서 비롯된 거예요. 하지만 살아오면서 깨달은 건, 많은 갈등이 본질적인 차이 때문이라기보다 사소한 태도나 말투, 표정 때문에 더 악화한다는 점이었어요. 그걸 알게 된 뒤로는, 굳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마 제가 말하는 '다정'은 그런 태도일 거예요.
책의 그 문장은 종교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본 것이에요. 과학자다 보니 사람들이 특히 '종교를 갖고 있느냐, 종교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많이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신이 없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교가 해온 역할은 무엇이었고 이제 과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저는 아마 신이 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훨씬 살기가 쉬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천국에 간다'라는 식으로 삶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했으니까요. 물론 과학이 처음부터 '신은 없다'를 증명하려 했던 건 아니지만, 연구를 통해 본의 아니게 신이 없는 듯한 증거들을 내놓게 됐죠.
그런데 여기서 기뻐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이 신을 대신하는 새로운 종교나 권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19세기, 20세기를 돌아보면,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 폭력적이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종교 자체가 폭력을 일으킨 적도 많지만, 동시에 종교가 약해지면서 사람들이 가치와 기준을 잃고 혼란을 겪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과학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그 역할을 인간이 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이 사라진 시대에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고, 희망을 주는 것. 쉽진 않겠지만 그것이 신의 힘을 약화하는 데 기여한 과학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 아닐까 합니다. 이 생각은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글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 심 박사님은 20대 시절 '말'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밝히셨어요. 가시 돋친 말에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대화법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셨다고요.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도 사려 깊은 화법이었는데, 실제로 책에서 도움을 받으신 부분이 있는지, 또 그 고민 끝에 어떤 결론에 도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심=저는 생각이 많고 그걸 바로 말로 옮기는 편인데, 그게 사실을 말한 거라도 상대방에겐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더라고요.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저도 반대 입장이 되면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서, 가족끼리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배워야 했습니다. '말'에도 사회적인 책임이 있고, 한 개인이 사회적인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태도를 조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연애할 때도 '내가 그러려던 게 아닌데 왜 싸우지?' 하다가 돌이켜보면, 애초에 하려던 얘기가 아닌 걸로 다투고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경험을 겪으면서 서로 상처 주지 않는 대화법을 고민했고, 그래서 정말 많은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사실 어떤 책도 완전히 답을 주진 못했어요. 다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저렇게도 접근할 수 있구나'라는 다양한 관점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됐죠. 저는 자기계발서의 지침을 그대로 따르는 편은 아니고, '사람들이 이렇게도 생각하는구나'를 배우는 데 의미를 두는 타입이에요.
저는 친구를 많이 사귀는 편도 아니라, 생활의 지혜들을 책에서 배우려 했던 것 같아요. 다만 소설 속 대사들은 정련된 캐릭터와 플롯 중심이라 현실의 사소한 대화를 배우긴 어렵잖아요. 특정 책이 도움 됐다기보다는, 책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대화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김상욱 교수님은 "물리에는 인간이 없지만, 모든 것에서 인간을 봐야 한다. 물리를 알려면 물리학자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고, 학문의 역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실제 과학 교육도 그렇게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김=사실 그런 내용까지 가르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쉽지 않아요. 대학에서는 과학사 같은 과목을 들으면 도움이 되지만, 중·고등학교는 입시와 연결돼 있어서 정해진 지식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저는 어느 학문이든 시작할 때, 또는 중간에라도 반드시 그 분야의 '역사'를 짚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리학과에도 '현대 물리학'이라는 필수 과목이 있는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양자역학 같은 어려운 개념을 배우기 전에, 그 배경과 변화를 역사적으로 이해시키려는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수의 역할이에요. 교과 내용은 빡빡하지만, 수업 초반에 단 몇 마디라도 '이 내용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얘기해주면 학생들의 동기부여가 훨씬 커집니다. 실제로 교과서에도 서론 부분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실려 있는데, 학생들이 시험에 안 나오니까 그냥 넘어가 버리거든요. 그러면 당장 시험은 볼 수 있어도, '왜 그럴까?'라는 질문엔 답을 못 찾게 됩니다.
요즘엔 과학사 관련 좋은 책도 많습니다. 예전엔 참고할 자료가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웬만한 분야마다 역사를 다룬 책들이 나와 있어요. 조금만 부지런히 찾아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거고, 더 좋게는 교수님들이 수업에서 관련 책을 추천해 주는 거죠. '이번 학기 주제와 연결된 역사책이 있으니 꼭 보라' 이렇게 안내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물리학과 학생들에게 '뉴턴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신다는 점도 흥미롭더라고요. "뉴턴의 법칙을 죽어라 공부하지만 정작 뉴턴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요. 결국 "그 모든 내용 뒤에는 그것을 알아낸 인간이 있고, 물리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고 하셨어요. 김=
학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직업으로 연구하는 걸 넘어, 그 주제가 너무 좋아서 파고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논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의 삶이 어떠한지 궁금해지는 거죠. 저도 학회에 가서 유명한 학자들을 직접 만나 악수하고 대화 나누는 게 무척 설레곤 했습니다. 또 제 분야처럼 연구자가 많지 않은 영역에서는 '이걸 연구하는 다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이 늘 있었어요.
▶ 요즘 학생들, 제자분들은 그렇지 않던가요?
김=솔직히 잘 안 그래요. 저도 학생 때는 그랬던 것 같고요. 하지만 사실 과학에서 정말 본질적인 질문은 다 인간과 관련돼 있어요. '이걸 왜 했을까, 왜 이렇게 했을까'라는 질문이죠. 과학 그 자체는 수학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건조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데,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늘 그런 배경과 인간적인 맥락이에요. 그래서 교육에서도 그런 부분이 꼭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업 시간에 늘 그 얘기부터 시작해요. 오늘 배울 주제와 관련된 역사가 있으면 들려주고, '왜 이걸 배워야 하는지'를 꼭 강조하죠. 예를 들어 측정기를 배운다고 하면, 왜 굳이 이 방법을 써야 했는지,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지,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구였는지 같은 이야기요. 그럴 때 학생들의 눈이 제일 반짝거립니다. 그다음부터 수학 계산이 나오면 조금 멍해지지만(웃음),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학생이 '어디를 모르는지' 아는 겁니다. 한 학기 16주 수업하면, 그중 몇 번은 이해 못할 수도 있죠. 그래도 '이 부분은 측정기에 관한 파트인데, 왜 필요한지는 알겠지만, 세부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라고 할 수 있다면, 나중에 스스로 채워 넣을 수 있어요. 하지만 '왜 배우는지' 자체를 모르면 전체가 텅 빈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늘 '왜 하는지'를 강조합니다. 모르는 부분에 박스 쳐 놓더라도, 최소한 그 박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나중에 메울 수 있으니까요.
▶ 심 박사님은 보기엔 차분하고 꼼꼼하실 것 같았는데, 의외로 덜렁대신다고요(웃음). 책도 파본만 고르신다든지, 결혼반지를 잃어버리고도 웃으셨다고.
심=사람들이 과학자라고 하면 차분히 앉아 연구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특히 천문학자는 국내에도 많지 않다 보니, 많은 분이 저를 일종의 상징처럼 보시고 '천문학자가 되려면 어떤 성격이어야 하냐, 어떤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제 경험으로는 천문학자들 사이에도 성격이 너무 다양해요. 차분한 사람도 있고, 덜렁대는 사람도 있고, 허세 부리는 사람, 겸손한 사람까지 다 있죠. 그래서 저도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급하면 말을 빨리하고, 당황해서 실수도 하고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그때 멈추지 않고 어떻게 수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느냐예요.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메이크업 기술'을 배우는 중이고, 그건 과학자냐 아니냐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아요.
▶ 김 교수님께서 심 박사님을 일컬어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면서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분", 혹은 "균형 잡힌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하셨던데요. "천문학자는 멀고 거대한 우주를 부수거나 변형할 수 없어,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하셨어요.
김='알쓸'을 찍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저를 포함한 다른 패널들은 다 자기 분야의 위대한 인물을 떠올리며 답했죠. 그런데 심채경 박사님은 아무 망설임 없이 '나 자신'이라고 하셨어요. 그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맞다, 그게 충분히 답이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그걸 너무 당당하게, 자연스럽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이분은 정말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물론 나쁜 의미가 아니라, 단단하게 자신을 긍정하는 힘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경험을 글에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나르시시즘'이라는 단어가 흔히 이기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다 보니, 그걸 중화하려고 '균형 잡힌'이라는 수식을 붙인 거예요.
제가 전하고 싶었던 건, 심 박사님이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질문은 가족이나 아이를 떠올려도 되는 건데, 많은 사람이 당연히 자기 자신이라 생각하면서도 쉽게 말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심 박사님은 툭 하고 말할 수 있었어요. 힘을 빼고, 바닥에서부터 생각하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한 거라고 봤습니다. 그런 단단함이 있지 않으면 결코 하기 어려운 대답이었기에, 저는 그걸 '균형 잡힌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 두 과학자가 문장을 갖고 노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김 교수님이 쓰신 '흑백 문체 계급 전쟁'에서 장문·단문 테스트를 해보시고, 그걸 토스 받아 심채경 박사님이 '빛과 고요와 빨래방'을 쓰셨는데요. 평소에도 문장에 대한 고민이나 의식을 많이 하시나요?
김=그때 제가 '흑백 요리사'를 재미있게 보고 있어서, '흑백'으로 문체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연재를 시작할 때는 '산문이니 시나 소설까지 다 시도해볼까' 생각했지만, 곧 무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대신 새로운 시도로 '장문'을 써보려 했는데, 저는 원래 단문이 익숙해서 만연체로는 한 편을 채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장문과 단문을 대결시키듯 써보자' 했죠. 마침 노벨문학상 시즌이라 한강 작가님의 <흰>을 북토크에서 다룰 일도 있어서 그 책을 선택했죠.
정말 놀란 건, 그 뒤에 심 박사님이 보내주신 답장이었어요. 파격적인 장문으로 시작하시는데, '아, 이게 진짜 장문이구나' 싶더라고요. 저도 한 문장으로 길게 가보려 했는데 도저히 불안해서 못 했거든요. 심 박사님 글을 보면서 '역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정부 출연 연구소에서 일하다 보면 그렇게 장문으로도 쓰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 두 분 다 책을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독서법은 정반대시더군요. 김상욱 교수님은 빨간 펜으로 밑줄 치고 메모하며 읽으시고, 심채경 박사님은 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요. 이런 습관을 형제 관계(첫째와 막내)로까지 분석하신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책은 어떤가요?
김=항상 두세 권 정도 책을 동시에 읽습니다. 어떤 건 재미로 보고, 어떤 건 방송이나 글을 준비하기 위해 읽죠. 저는 주로 논픽션, 지식 전달형 책을 위주로 읽고 문학은 거의 보지 않아요. 꼭 필요하다고 믿는 작품만 가끔 읽는 정도죠.
지금은 조지프 헨릭의 <위어드>, 얼마 전엔 <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 같은 인류학책들을 보고 있어요. 어떤 땐 중국 역사, 전쟁사, 미술사 등으로 확 몰입하기도 했고, 영화에서 중동 이야기를 보면 중동사 책으로, 바이킹 얘기를 보면 바이킹 관련 책으로 꼬리를 물고 확장되곤 합니다. 종교사로 넘어가다 보니 초창기 종교와 마약의 관계까지 찾아봤던 적도 있어요. 저는 그냥 뭐든지 다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그래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이 제일 어렵습니다. 문학은 다른 분야에 비하면 20대 1 정도의 비율로 적어요. 안타깝지만, 꼭 봐야 한다고 믿는 몇 권만 읽는 편입니다. 좋아하는 책들은 밑줄을 치고 문장을 여러 번 들춰보면서 필요할 때 꺼내 쓰기도 합니다.
심=저는 독서가 휴식이에요. 일이나 연구를 위한 자료 조사는 독서로 치지 않고, 주로 소설을 많이 읽습니다. 특히 한국어 단편 소설을 좋아해요. 한국어 특유의 정서와 말맛이 있어서, 한국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결을 느낄 때 즐겁거든요. 김영하 작가님 책은 전부 읽었고, 김중혁·이기호 작가님 책도 좋아합니다. 새 작품이 나오면 습관처럼 사는 편이에요. 장대한 플롯보다는 일상의 한 장면을 담은 글을 좋아해서, 제가 쓰는 글과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국내 소설 위주에서 조금 넓혀 해외 작품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 김상욱 교수님은 미술을 무척 좋아하시는데, 그림이 궁금해지면 박사학위 논문까지 찾아보시더라고요.
김=언제나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요. 특히 책에 언급한 마네 그림은 그림 자체보다 미셸 푸코가 쓴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꼈죠. 위대한 철학자가 그림을 두고 책까지 썼다는 게 신기해서 읽었는데, 그 과정에서 논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뒤로 관련 서적을 읽다가 뭔가 석연치 않아 검색을 시작했고, 박사학위 논문을 찾게 됐습니다. 원문 전체를 본 건 아니지만, 정리된 블로그나 자료를 통해 알게 됐어요. 그 논문은 정말 방대하고 정교했는데, 현장 조사와 3차원 도면까지 다루더군요. 정말 아름다운 논문이었어요.
심=저도 가끔 뭔가에 꽂히면 논문을 찾아봅니다. 논문이 있으면 너무 행복해요. 보통은 짧지만, 학위 논문은 책 한 권 분량으로 디테일하게 쓰여 있어서 깊이 들어가기 좋거든요. 연구자들에게는 논문 검색이 일상이죠. 저희는 네이버·구글 검색뿐 아니라 논문 검색 사이트까지 단계적으로 들어가요. 자연스럽게 깊어지는 흐름이에요.
김=맞아요, 학위 논문이 최고예요. 서론부터 역사까지 다 정리돼 있고, 레퍼런스도 400~500개씩 달려 있죠. 그 연도 이전 연구는 거의 다 망라돼 있으니, 좋은 학위 논문 하나 만나면 '게임 끝났다' 싶습니다. 이후엔 그 논문을 인용한 다른 연구까지 따라가면 되니까, '덕질'에는 논문만 한 게 없죠.
▶ 인생 책을 꼽아 주신다면요.
심=저는 항상 꼽는 책이 딱 한 권 있어요. 법정 스님의 <무소유>입니다. 지금은 절판돼서 서점에서 보긴 힘들어요. 제 어린 시절엔 서점마다 항상 있었어요. 작은 문고본이라 들고 다니기 좋았고, 내용도 제 성격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원래 웅장하고 거대한 것보다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좋아하는데, 그 안에서 깊은 울림을 줬던 책이라 늘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김=인생 책을 꼽긴 무척 어려운데요. 최근까지 제 생각을 크게 바꾼 책이라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말할 수 있겠네요. 상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명징하게 보여준 책이에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이 세상이 물리적 실체와 인간의 상상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확실히 깨달은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뻔한 얘기라고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저한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전환해준 책이었어요. 이후 여러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늘 새로운 생각을 깨닫게 해주는 책을 좋아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사피엔스>는 제게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
▶ 애서가인 두 분의 추천 책이 궁금합니다.
■ 물리학자 김상욱의 추천 책
1. <호모 사피엔스> | 조지프 핸릭–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을 설명하는 최고의 책. 현재 과학이 인간을 설명하는 최선의 이론이라 생각한다.
2. <위어드> | 조지프 핸릭- 서양 문명은 다른 모든 문명과 비교하여 아주 이상한(weird) 문명이라는 주장. 유전화·문화 공진화론으로 서양 문명을 해부한다.
3.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 리사 펠드먼 배럿- 인간의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하지 않았다. 뇌의 진짜 목적을 알려주는 책.
4. <권력과 진보> |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기술 혁신이 언제나 인류의 번영의 가져온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 혁신의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책.
5. <넥서스> | 유발 하라리- 인공지능의 비관적 미래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유려한 글.
6. <휴먼 카인드> | 뤼트허르 브레흐만-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짧은 버전. 이 책을 읽으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생긴다.
7. <이토록 굉장한 세계> | 에드 용- 제목 그대로다. 경이롭고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8. <면역> | 필리프 데트머- 감기에 걸렸을 때 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누구나 알아야 할 면역의 과학.
9. <난처한 미술이야기> | 양정무- 풍부한 도면과 충분한 설명.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대체할 역작이다. 더구나 쉽고 재미있다.
10.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12.3 계엄을 겪으며 우리의 민주주의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100여 년간 민주주의가 무너진 나라들의 이야기.
■천문학자 심채경의 추천 책
1. <우주적인 안녕> | 하재연-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가, 하재연이라는 우주에 스며들게 되는 시집.
2. <검은 꽃> | 김영하- 물리적인 실체가 없기에 더 선명했던 경계를 끝없이 넘었던 사람들. 초기 멕시코 이민 사회를 조명하는 소설.
3. <악기들의 도서관> | 김중혁- 어디에나 있을 듯하지만, 김중혁의 소설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들.
4. <너무 늦은 시간> | 클레어 키건- 그렇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의 존엄과 연민이 담긴, 간결해서 더 슬픈 문장들.
5. <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결핍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묻는 단편집
6. <벨 자> | 실비아 플라스- 너무도 익숙한 누군가의 삶을 낯설게 비추는 자전적 소설.
7.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 주혜진- 노잼이는 별명이라도 있는 도시, 사람들이 대전을 방문하는 이유를 파헤쳐 ‘비서울‘의 지역성을 묻는 책.
8.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 민태기- 아인슈타인의 시대, 그의 숨결이 이 땅에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9. <한글과 타자기> | 김태호- 오늘도 자판을 두드리며 울고 웃는다. 그런데 'ㅋ'과 'ㅎ'의 자리는 언제부터 거기였을까.
10. <달은 대단하다> | 사이키 가즈토-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달 탐사 입문서.
'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