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대학교'가 실제로 있는 것 알고 계셨나요? 삼성그룹이 인수한 성균관대학교 얘기를 하는 게 아니구요. 진짜로 삼성대학교가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삼성전자공과대학교인데요. 삼성그룹이 반도체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 만든 사내 대학교입니다. 이 학교를 나오면 수료증을 받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정식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시철이 되면 "제가 고3 엄마인데 우리 아이 어떻게 하면 삼성공대 들어갈 수 있나요?"라는 문의가 많이 온다는데요. 삼성공대는 사내대학이기 때문에 삼성전자 임직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입니다.
삼성전자공과대학교를 나오면 학사 학위를 주잖아요. 그러면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사내대학도 있을까요? 답은 '아니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법으로 학사 학위를 주는 사내대학은 설립할 수 있지만, 석·박사 학위를 주는 사내대학원은 설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LG그룹이 나서서 이걸 해결했습니다. 정식 석·박사 학위를 주는 세계 최초의 사내 대학원인 ‘LG 인공지능(AI) 대학원’이 내년 9월 문을 엽니다. 내년 1월 ‘첨단산업인재혁신특별법(첨단인재법)’ 시행에 따라 ‘삼성대 석사’, ‘LG대 박사’를 배출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LG그룹은 내년 9월 교육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사내 대학원인 LG AI 대학원을 정원 30명(석사 20명·박사 10명) 규모로 개교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학사 학위를 주는 사내 대학을 운영하는 사례는 있지만 석·박사 학위를 주는 사내 대학원은 LG그룹이 세계 최초입니다.
LG그룹은 2022년부터 사내 대학원 과정을 운영했습니다. 과정을 마친 임직원에게 석·박사 학위를 줬지만 정식 학위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법상 사내 대학은 설립할 수 있지만 사내 대학원은 법적인 근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내 대학원이 가능해진 것은 첨단인재법이 지난 18일 입법예고를 마치고 내년 1월17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사내 대학만 가능했던 평생교육 시설의 설치와 운영이 사내 대학원으로 확대됩니다.
첨단인재법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모빌리티와 같이 고도 인재가 절실한 최첨단 산업에 즉시 전력감의 인재를 공급하고,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기존 인력을 재교육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LG AI 대학원은 첨단인재법의 적용을 받는 첫 사내 대학원입니다. 교육부 인가를 받은 대학원이기 때문에 정식 석·박사 학위를 줄 수 있습니다. 이 학교 출신 석사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박사 과정에 도전하고, 박사가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존 대학원의 교원 임용 제도와 학생 선발 방식의 틀도 깼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교수가 되려면 총 10년 이상의 연구·교육 경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사실상 박사 학위가 필수여서 대학 교수는 대부분 전문 교육가의 길을 걸어온 학자들로 채워졌습니다.
교육 기자재의 한계도 뚜렷했습니다. 한 사립대 반도체학과 교수는 “나노급 노광장비는 대당 가격이 수백억 원을 넘다 보니 기업의 퇴역 설비를 기증받는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첨단 산업 분야의 기술은 월이나 분기 단위로 발전하는데 대학원은 한·두 세대 전의 지식을 가르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첨단인재법은 기술사나 기능장 자격을 갖고 있거나 석·박사가 아니어도 해당 산업 분야에서 10~13년 이상 종사한 전문양성인이라면 사내 대학원의 교수가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덕분에 사내 대학원은 회사 내에 위치한 캠퍼스에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현역 전문가가 기업의 고가 실험·생산 장비와 고유 데이터를 활용해 인재를 기를 수 있게 됐습니다.
LG그룹도 20년 가까이 AI를 연구한 전문가이면서 삼성탈레스와 SK텔레콤, 구글의 AI 연구조직 ‘구글 브레인’을 거친 현역 임원급 기업인들로 교수진을 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커리큘럼도 자유롭게 짤 수 있습니다. 반도체 대학원이라면 ‘낸드플래시 전공’, ‘D램 전공’, ‘HBM 전공’ 등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석·박사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2년 걸리는 석사 학위는 1년 만에 딸 수 있습니다. 2년 이상 걸리는 박사 학위는 6개월, 석·박사 통합 과정은 1년 6개월로 취득 기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업들이 AI와 반도체 같이 글로벌 인재 쟁탈전이 벌어지는 첨단 산업 분야의 인재를 단기간에 자체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독자적으로 사내 대학원을 운영하기 힘든 기업은 기존의 대학에 위탁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성한 커리큘럼과 교수진으로 대학의 인력과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한화그룹이 충남대에 방산 전문 사내대학원을 위탁했다면 학위 취득자는 한화방산대학원/충남대 석·박사 학위를 받는 식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삼성·SK반도체대학원, 현대차모빌리티대학원 같이 각 기업의 주력 사업에 특화한 사내 대학원 설립이 가능해졌다”며 “인구 감소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대학과 ‘윈·윈’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요국 정부와 기업들은 산업 발전 속도에 맞춰 근로자의 업무 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재교육(리스킬링)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첨단산업 분야의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지자 새로운 인력을 확보하기보다 기존 직원을 재교육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영국 정부는 2021년부터 25억 파운드(약 3조8000억 원)를 투자해 성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순 근로자를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로 교육하는 정책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같은 해 3월 ‘미국고용계획’을 발표하고 환경 등 성장 분야 인재 개발에 1000억 달러(약 140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는 전기차 전환에 대비해 2025년까지 15만 명의 자국 근로자를 재교육합니다.
2019년 아마존은 총 7억 달러를 투자해 2025년까지 약 10만 명의 종업원을 재교육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2021년 5월에는 사내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엔지니어 기술을 익힌 창고 작업원을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 ‘AWS’ 같은 첨단 부서에 재배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디지털화 가속으로 2025년까지 8500만 명의 고용이 줄어드는 대신 인공지능(AI) 전문가 등 9700만 명의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재교육을 통해 근로자 생산성을 개선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2030년까지 6조5000억달러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