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푸드 열풍, 지금이 구조 재정비의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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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열린 ‘남도미식문화포럼’에 참석한 이규민 한식진흥원 이사장(앞줄 왼쪽 다섯번째), 김태희 미식문화포럼 위원장(앞 줄 왼쪽 일곱번째)을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한국미식관광협회)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떡볶이, 라면, 치킨, 냉동만두까지. 한국의 매운맛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 시장까지 점령하고 있다. ‘K푸드’라는 이름 아래 즉석 식품과 스트리트 푸드는 전 세계의 식탁에 오르고, 글로벌 유통망은 한국 식(食)문화를 하나의 ‘브랜드’로 소비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열풍이 “문화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며 강한 경고음을 냈다. 한식이 진정한 글로벌 식문화로 자리매김하려면 구조적 전략과 정책적 설계, 그리고 산업적 기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열린 ‘2025 남도미식문화포럼’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선 이욱정 요리인류 대표이사 겸 다큐멘터리 감독은 “현재의 인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사진=한국미식관광협회)
◇K푸드 열풍, 철학없인 오래가지 않는다

지난 20일 열린 ‘2025 남도미식문화포럼’은 K푸드의 현재를 점검하고, 세계화를 위한 지속 가능한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요리, 식문화, 외식 산업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연사들은 “지금의 K푸드 인기는 단기 유행에 불과할 수 있으며 향후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철학·정책·인재라는 구조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조강연에 나선 이욱정 요리인류 대표이사 겸 다큐멘터리 감독은 “지금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지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라며 “단순히 매운맛이나 제품 중심의 수출 전략에서 벗어나 한식이 담고 있는 철학과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한식 세계화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메뉴가 아니라 왜 이런 음식을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문화적 메시지’라는 얘기다.

이 감독은 프랑스와 일본을 사례로 들며 “두 나라가 미식 강국이 된 것은 맛 때문이 아니라 철학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의 식문화에는 자연과 인간, 절기와 계절, 공동체의 윤리가 깃들어 있다”며 “한식 고유의 세계관이야말로 글로벌 식문화 담론 속에서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찰음식, 나물, 발효음식에 주목했다. 그는 “기후위기 시대에 육식 중심 식문화는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며 “한국은 예로부터 채소 중심 식생활을 발전시켜 왔고, 이는 미래 식량 구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식은 혀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몸과 마음, 지구 전체를 위한 식문화”라면서 “우리가 일본을 넘어 한식의 브랜드를 세계에 남기기 위한 핵심 조건이다”고 강조했다.

한식의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현장’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 감독은 “지금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곳이 된장찌개, 김치찌개, 백반을 파는 골목식당”이라며 “이들이야말로 한식의 최전선인데, 병사들이 모두 떠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외식업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영역이 됐다”며 “한식 전공 인재들이 산업에 정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결국 한식은 전통도 산업도 지속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열린 ‘2025 남도미식문화포럼’에서 김혜준컴퍼니의 김혜준 대표는 뉴욕 현지에서 고급 한식 레스토랑 ‘주옥’의 브랜딩 업무를 담당하며 마주친 구조적 장벽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한식의 세계화 위해선 통합 거버넌스 체계 필요

한국 식문화의 글로벌 브랜드화를 위해 핵심 재료의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해외에서 한식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인력과 재료, 법규, 유통까지 총체적인 구조가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정부 차원의 패키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에서 고급 한식 레소토랑 ‘주옥’의 브랜딩 업무를 맡고 있는 김혜준컴퍼니의 김혜준 대표는 “들기름과 식초 같은 핵심 재료를 제대로 공급받을 수 없었고, 결국 뉴저지 인근에 작은 농장을 열어 직접 배추와 달래를 재배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대표는 또 “한식은 메뉴를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 공예, 서비스, 디자인, 심지어 기후와 계절까지 포괄하는 복합문화 콘텐츠”라며, “그 복합성에 걸맞은 전략과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지금 한식 세계화의 최대 위기는 정책의 부재와 무계획”이라고 진단했다. 단발성 박람회나 홍보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식문화 산업 전반을 기획할 국가 전략과 통합 거버넌스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욱정 감독은 “한국은 미디어, 셰프, 식재료, 유산 등 자원이 매우 풍부하지만 이를 하나로 묶는 전략이 없다”며 “정부가 나서서 식재료 유통망, 법률 자문, 인재 지원, 콘텐츠 개발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한식 세계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미래 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식문화 유통망 구축 ▲현지 식재료 조달 인프라 조성 ▲한식 콘텐츠 국제 인증제도 도입 ▲지역 명인과 글로벌 셰프 간 멘토링 프로그램 마련 등 ‘체계적 거버넌스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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