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손기정' 사인에 새긴 독립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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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손기정 선수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 결승선이 있는 올림피아슈타디온 경기장. 선두로 들어온 건 동양인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금메달의 기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1면 기사에 이렇게 썼다. “그의 얼굴은 대리석 마스크처럼 무표정했다.” 한국인인 그의 가슴에 붙어 있는 국기는 일장기였기 때문이다. 한 독일인이 사인을 요청하자 그는 독립의 소망을 담아 이렇게 적었다. ‘Korean 손긔졍’.

지금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특별전에서는 이 엽서 실물이 사상 최초로 국내에 전시되고 있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1912~2002)을 조명한 이번 전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과 월계관 등 관련 유물 18건이 나와 있다.

대표 유물은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주는 부상이었다. 손 선수는 1994년 이 투구를 “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여러 유물을 통해 손 선수의 애국심과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슬픔, 당시 시대상을 볼 수 있다. 손 선수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제 나라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과연 그들을 막을 자가 누구인가.” 전시는 12월 28일까지.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에서는 ‘광복 80주년, 다시 찾은 얼굴들’이 열리고 있다. 전시 맨 앞 패널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서 따온 문구가 붙어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전시에는 안중근 의사 유묵, 이봉창·윤봉길 의사 선서문, 일제 감시 대상 인물 카드 등 100여 점이 나왔다. 인물 카드는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의 신상 정보, 수감 상황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제작한 신상 정보 자료로, 이번에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광복 80주년이 흘러 그들이 꿈꿨던 당당한 나라, 문화의 힘이 높은 나라는 현실이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 들어 이날까지 4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박물관을 방문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게 주요인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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