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 콘텐츠 어느 정도길래…불법 시청 기승에 '특단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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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너의 연애' 갈무리

사진=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너의 연애' 갈무리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한 K콘텐츠 유통과 시청이 극성에 다다르자 콘텐츠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시청 가능한 플랫폼을 마련해 눈길을 끈다. 구조적으로 불법 유통을 막기 어려워 제작사가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불법 유통이 사라지는 선순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저작권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초 레즈비언 연애 프로그램인 '너의 연애' 제작사 디스플레이컴퍼니는 불법 시청을 막기 위해 자체 시청 플랫폼인 'LEMON'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제한적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통 경로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다. 현재 '너의 연애'를 송출하는 OTT 플랫폼은 한국의 '웨이브', 일본의 '라쿠텐TV'뿐이다. 그 외 다른 국가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외국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공식 방영되기 전부터 '너의 연애'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국가에서 시청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심지어는 '불법 플랫폼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협박성 댓글을 남기긱도 했다. '너의 연애' 제작사는 공식 방영한 지 약 보름이 지나 한국, 일본, 몽골을 제외한 해외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자체 플랫폼을 만들어 해외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장의 이익을 얻진 못하더라도 저작권을 지키고 지식재산권(IP)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자체 시청 플랫폼에도 불법 경로를 통한 시청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너의 연애' 제작사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은 현재 누누티비, 티비몬, 빌리빌리 등 해외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 업로드되고 있다.

'너의 연애' 제작사 관계자는 "LEMON 등 글로벌 서비스를 정식으로 하기 전부터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 불법 경로를 통한 시청이 급격히 확산했다. 현재도 공식 플랫폼 외에서 시청하는 사례가 계속 확인된다"며 "불법 시청은 저작권 침해를 넘어 프로그램의 정상 유통과 소수자 서사를 다루는 유사 콘텐츠의 제작 가능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불법 유통을 통해 입은 국내 콘텐츠 시장 피해액은 약 5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최대 규모 저작권 침해 사이트인 누누티비가 대표적이다. 누누티비는 2021년 개설돼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국내외 OTT 콘텐츠는 물론 카카오웹툰 등 웹툰, 웹소설 콘텐츠까지 수십만 건을 불법 유통했다. 영상저작권보호협의체는 2023년 당시에만 누누티비로 인한 저작권 피해액을 약 5조원으로 추산했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업로드가 멈춘 것도 아니고 과거 업로드된 콘텐츠로 지속해서 시청이 늘어났을 거라 피해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GL, BL 장르의 경우 유통 판권을 확보하기 상대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불법 콘텐츠 유통이 성행하면 현지 유통사 입장에선 '돈 주고 보지 않는 콘텐츠'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판권 수출이 더 어려워져 공식 유통 경로가 확대되지 않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불법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공조 수사 문제도 얽혀있다. 불법 스트리밍 플랫폼의 경우 반드시 경찰 등 현지 단속 기관과 함께 공조해 수사를 할 수 있다. K콘텐츠를 수입한 유통사가 있다면 현지 당국에 단속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명확해 공조가 비교적 쉽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현지 당국이 직접 K콘텐츠 불법 유통을 수사할 이유가 없어 단속이 어려워진다.

이성민 한국방통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너의 연애' 제작사가 만든 자체 시청 플랫폼은 해외 불법 시청을 막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현지에 IP를 알려 유통 경로를 넓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으면 정식 유통 경로가 늘어나는 가능성이 커지고 공조 단속도 쉬워져 K콘텐츠가 보호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너의 연애' 사례는 불법 유통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테스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저작권 인식 제고가 우선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제3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K콘텐츠를 유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뿐더러 저작권법이 미흡해 공조 수사 자체가 어려운 국가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유통 경로가 적어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이용한다는 건 적반하장의 논리다. 중요한 건 불법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이라며 "엄벌도 중요하지만 공조 수사가 안 되는 국가도 있어 도깨비 방망이처럼 한번에 해결할 순 없다. 이 때문에 제작사나 유통사가 단체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불법 유통 단속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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