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력수요 맞추려면, 송전망 확충 속도 지금보다 6배 빨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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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증가 못따라가는 전력망] 정부, 2038년까지 70% 증설 계획
사업 3건중 1건 평균 5년 지연… 반도체 공장 짓고도 전력난 우려
“한전 인력만으론 주민 설득 한계… 갈등 조정 민간역할 늘려야” 지적

경기 안산시 시화호에 설치된 초고압 송전탑. 안산=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경기 안산시 시화호에 설치된 초고압 송전탑. 안산=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정부는 2038년까지 약 73조 원을 투입해 송전망을 지금보다 70%가량 늘리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담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으로 향후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보다 6배 이상 빠른 속도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 반대와 인허가 문제 등으로 주요 송전망 사업이 잇따라 지연돼 이대로라면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력망 확충은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인 만큼 사업 속도를 끌어올릴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송전망 사업 3분의 1 이미 5년 이상 지연

정부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총 6만1183C-km(서킷킬로미터·선로 길이X회선 수) 규모의 송전선로를 구축할 계획이다. 지난해 송전망 길이(3만6184C-km)보다 69.1% 늘어난 수준이다. 반도체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첨단산업단지 조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동해안과 호남 지역의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초고압 직류 송전망(HVDC)’ 설치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핵심은 정책 추진 속도다. 정부 계획을 달성하려면 앞으로 13년 동안 연평균 1923C-km가량의 송전망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 최근 5년간 연평균 확충 길이(304C-km)의 6배를 넘는 규모다.

목표는 야심차지만 실제 추진은 지지부진하다. 송전망 사업 상당수는 주민 반발과 인허가 문제에 막혀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늦어지고 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현재 추진 중인 주요 전력망 건설 사업 52건 가운데 18건은 준공 시기가 최초 목표보다 연기됐다. 평균 지연 기간만 5년 3개월에 달한다.

신평창 변전소 사업은 지역 주민의 거센 반대에 사업이 표류하면서 준공 시점이 2016년 말에서 2028년 말로 12년이나 미뤄졌다. 7년 전 완공을 목표로 했던 동해안∼신가평, 동해안∼동서울 HVDC 사업 역시 올해 말과 내년 말로 준공이 미뤄졌다.

● 수백조 원 공장 짓고도 가동 걱정

국내 기업들은 수십조, 수백조 원을 들여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지어놓고도 자칫 전력 부족 탓에 제대로 가동하지 못할까 봐 우려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유휴 전력이 많은 지방에 공장을 지으라고 종용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지방에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면 고객을 확보하기 어렵고 유지관리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1∼6월)에 1기 팹(공장) 가동을 목표로 경기 용인시에 반도체 클러스터(산단)를 조성하고 있다. 공장을 모두 돌리기 위해 필요한 전력량은 총 15GW(기가와트)다. 통상 1GW 규모인 원전 15기 발전 용량에 해당한다. 이 중 삼성전자는 9GW가 필요한데 현재까지 6GW를 확보했고, SK하이닉스는 6GW 중 3GW를 확보했다. 두 회사가 앞으로 6GW를 추가로 마련해야 계획했던 공장들을 정상 가동할 수 있게 된다.

수도권 전력은 이미 과포화 상태여서 동해안의 원전, 화력과 호남의 재생에너지를 끌어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송변전 인프라가 부족해 재생 에너지 수급로가 막혀 있다.

● 특별법 시행에도 사업 지연 지속… BT 방식 도입 추진

정부는 송전망 건설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특별법)을 제정하며 주민 보상과 지원 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송전선로 건설에 조기 협의한 토지주에게는 보상금을 최대 75% 추가 지급하고, 송전선로 인근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원 규모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협의와 보상 절차는 결국 한전에서 담당해야 하는데, 직원들 사이에서 적극적인 보상 협의에 나섰다가 자칫 감사를 받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탓이다.

이런 이유로 송전망 건설 과정에서 민간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미 정부는 국가기간 전력망 건설에 민간 자본과 역량을 활용하는 이른바 ‘BT’(Build Transfer·건설 후 이전) 방식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입지 선정과 주민 협의, 건설 등을 민간이 맡고 준공 후에는 한전이 소유·운영하는 구조다. 관련 법안은 최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특별법이 제대로 활용된다면 주민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테지만, 한전의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며 “민간에 일부 사업을 맡길 경우 보상 비용이 더 들 순 있겠지만, 창의적인 갈등 조정 방안이 제시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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