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자금, 한국 반도체주서 중국 기술주로”…블룸버그 ‘순환매’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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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투자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중국 상하이 증시의 대형 우량주 50개 종목을 구성된 ‘상증 50지수’의 역동적인 상승 차트를 주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한 투자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중국 상하이 증시의 대형 우량주 50개 종목을 구성된 ‘상증 50지수’의 역동적인 상승 차트를 주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인공지능(AI) 열풍을 이끌었던 한국 반도체주에서 중국 기술주로 투자자금이 이동하는 ‘AI 순환매(AI Rotation)’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I 투자 열기가 식은 것이 아니라 크게 오른 한국·대만 반도체주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중국 기술주로 투자 대상이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8일 “아시아 시장에서 AI 순환매가 속도를 내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올해 랠리를 이끌었던 반도체 기업에서 자금을 빼내 AI 성장의 새로운 수혜주를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자금 이동 속에 코스피는 지난달 기록한 사상 최고치 대비 약 20% 하락하며 기술적 약세장에 진입했다. 반면 홍콩 항셍 중국기업지수는 장중 4.5%까지 오르며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 “반도체서 중국 AI로”…순환매 본격화

올해 투자자들은 AI 수요 급증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에 집중 투자했다.

그러나 랠리가 장기화되고 AI 투자 확대가 계속될 수 있을지를 둘러싼 의문이 커지면서 투자자금의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홍콩 증시에서는 알리바바가 13% 이상 급등했고 텐센트도 4% 넘게 올랐다.리드캐피털의 제럴드 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국과 대만의 AI 랠리가 피로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대규모 조정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다만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의 집중 위험을 의식하면서 비중을 재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순환매에는 중국 AI 기업들의 자체 반도체 개발 움직임도 영향을 미쳤다.

로이터는 딥시크가 자체 AI 칩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디인포메이션은 생성형 AI 기업 즈푸(Zhipu)도 미국의 수출 규제와 AI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칩 설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스티븐 쩡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상황을 고려하면 딥시크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시장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코스피 약세장…삼성전자·SK하이닉스 하락

이날 코스피는 5.4% 하락하며 지난달 최고점 대비 낙폭이 약 20%까지 확대됐다. SK하이닉스는 5.7%, 삼성전자는 6.3% 각각 하락했다. 반면 올해 또 다른 AI 수혜 시장으로 꼽힌 대만 증시는 장중 등락을 거듭한 끝에 소폭 상승 마감했다.

블룸버그는 이달 들어 홍콩 증시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코스피는 주요 시장 가운데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스피는 올해 고점 기준 약 116% 상승했지만 현재 상승률은 약 72% 수준으로 줄었다. 다만 여전히 블룸버그가 추적하는 92개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삼성전자가 이번 주 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9배 증가했다고 발표했음에도 주가가 하락한 점도 시장 분위기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혔다. 시장에서는 AI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된 데다, 향후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AI 투자 기조가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둘러싼 신중론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이언 샘슨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AI로 인한 반도체 수요는 실제로 매우 강하지만 결국 소수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약 1조달러 규모의 설비투자를 주도하고 있다”며 “이 같은 투자가 예상보다 빨리 둔화하면 반도체 업종의 하방 위험도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올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1000억달러 이상 순매도하는 동안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받아내면서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더욱 커졌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 “중국은 아직 싸다”…저평가 매력 부각

반면 중국 증시는 올해 대부분 중국 경기 둔화와 전자상거래 업황 부진 우려로 소외돼 왔다.

항셍테크지수와 항셍 중국기업지수는 이날 급등에도 올해 각각 약 15%, 10% 하락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같은 부진으로 밸류에이션이 낮아진 점이 오히려 투자 매력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항셍 중국기업지수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9배로 MSCI 아시아지수(13배)를 밑돈다.

제럴드 간 CIO는 “중국과 다른 시장의 성과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중국 주식의 가치 매력이 커졌다”며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중국 대형 기술주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흐름을 중국 AI 기업이 한국 반도체 기업을 앞질렀다는 의미로 보기보다, 그동안 크게 오른 반도체주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중국 기술주로 투자자금이 이동하는 자산 재배분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블룸버그도 중국 AI 관련 뉴스가 순환매의 촉매제가 됐지만, 낮은 밸류에이션과 포트폴리오 집중 위험 완화가 자금 이동의 핵심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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