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노화법 전파하는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
역할 있다는 믿음이 삶 지탱
지금도 강연하면서 글쓰기
일상 속 움직임이 노화 늦춰
자주 계단 오르며 운동해야
몸이 청소할 시간 주려면
12시간 공복 지켜야 건강
"나는 아직 현역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남에게 신세 지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하면 내 삶의 중심이 흔들립니다." '92세 현역 의사' 이시형 박사는 노화를 쇠퇴나 체념의 시간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 삶을 책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나이가 들수록 몸의 기능은 예전 같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도 하나둘 줄어든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아직 역할이 있다는 믿음이다. 이 박사는 "내가 할 일이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감각이 노년을 지탱한다"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평생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구순을 넘긴 지금도 강연하고,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한다. 이 박사는 지하철을 탈 때도 요금을 낸다고 했다. 자신이 아직 사회와 연결된 현역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 노화는 병 아닌 삶의 과정
그가 말하는 노화는 병도, 죽음의 예고편도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지만 어떤 습관을 쌓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노년의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이 박사가 강조하는 '행복노화' 역시 젊음을 붙잡는 특별한 비법이 아니다.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이 박사가 행복노화를 위해 강조한 것은 일상 속 움직임이다. 그는 강연장에 갈 때도 일부러 차를 멀리 세운다. 아파트나 백화점, 공원 어디서든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가까운 곳을 찾지만 그런 편리한 선택이 결국 몸을 덜 쓰는 습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운동한다고 꼭 트레이닝복을 입고 헬스장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생활 속 소소한 활동만으로도 충분한 운동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노화 방지법으로 꼽은 것은 계단 오르기다. 다만 계단을 오르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르고 싶게 만드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둡고 물건이 쌓인 비상통로가 아니라 그림이 걸려 있고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이라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계단을 오르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한 습관은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생활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 몸은 비우고 뇌는 깨워야
식습관에서는 '비우는 시간'을 강조했다. 이 박사는 현대인의 몸이 하루 종일 먹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인류는 오랜 기간 배고픔 속에서 살아왔고, 몸은 먹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오가며 균형을 맞춰왔다. 그러나 지금은 식사와 간식이 이어지면서 몸이 계속 소화와 흡수에 매달리는 상태가 됐다. 그는 몸을 스위치에 비유했다. 먹을 때 몸은 '온(on)' 상태가 되고, 먹지 않는 시간에는 몸이 쉬면서 세포가 스스로를 정리하고 찌꺼기를 배출하는 '오프(off)' 상태가 된다. 하루 종일 먹으면 몸이 스스로를 청소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이 박사는 "세끼를 먹더라도 최소한 12시간은 비워놔야 한다"며 "저녁을 일찍 먹고 다음날 아침까지 위장을 쉬게 하는 시간이 몸을 청소하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는 읽기와 쓰기를 강조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AI)이 답을 대신 찾아주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생각하는 힘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 문인화에 관심을 쏟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에게 문인화는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짧은 글과 그림을 보고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를 묻는 과정에서 생각의 힘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 고독도 창의의 시간으로
고독은 피할 수 없는 노년의 과제다. 나이가 들면 자녀는 떠나고 친구는 줄어든다. 익숙한 관계는 하나둘 사라지고 혼자 있는 시간은 길어진다.
이 박사는 "외로움이 괴로움이 되면 안된다"며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명상, 글쓰기, 그림, 춤, 악기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고 채울 수 있는 취미를 하나는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같은 맥락이다.
이 박사가 40·50대에게 당부한 말은 "20년, 30년 뒤의 자신을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40·50대는 일생에서 책임질 것이 가장 많은 시기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몸과 마음 건강은 뒤로 밀리기 쉽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의 생활습관이 노년의 모습을 결정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혜순 기자 / 사진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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