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어르신 6·25 일기, 인천의 유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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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참전 당시 쓴 일기
인천 서예가 근대 서화 56점 등
시립박물관에 총 478점 기증돼
역사-문화 등 사료적 가치 인정

6·25전쟁에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했던 심재갑 할아버지가 1951년 1∼6월 노트를 반으로 잘라 쓴 일기.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창설돼 정규군보다는 예비 병력에 가까웠으나 훈련 부족과 열악한 처우 등의 문제로 6개월여 만에 해체됐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6·25전쟁에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했던 심재갑 할아버지가 1951년 1∼6월 노트를 반으로 잘라 쓴 일기.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창설돼 정규군보다는 예비 병력에 가까웠으나 훈련 부족과 열악한 처우 등의 문제로 6개월여 만에 해체됐다. 인천시립박물관 제공
인천 부평구에 살고 있는 안용진 씨(77)는 시댁에서 물려받아 보관해 오던 근대 서화류 56점을 인천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시조부인 고 장석웅 선생은 인천 출신 예술인 김은호, 박세림과 오세창, 이귀하 등 당대 서예가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그가 살았던 중구 송월동 집의 당호(堂號)에 자신의 호인 ‘경운’을 붙여 경운재(耕雲齋)라 불렀는데, 기증된 다수의 작품에 당호 등이 함께 적혀 있다. 특히 김기창, 변관식, 고희동, 김용진, 최우석, 이병직 등 그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함께 그린 ‘합작도’는 다양한 화풍이 한 폭에 그려져 독특한 예술성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천시립박물관은 최근 시민들의 애환이 서린 소중한 이야기가 담긴 유물 158건(478점)을 기증받았다고 25일 밝혔다. 박물관이 1월부터 시민들에게 기증받은 유물은 모두 476건(2106점)에 이른다. 특히 이번에는 단체나 법인보다는 개인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가 많이 기증됐다.

서구 가좌동에 거주하는 심재갑 할아버지(90)는 6·25전쟁 당시 17세에 국민방위군으로 참전해 쓴 ‘국민방위군 일기’를 내놓았다. 그가 제주도에서 복무한 6개월 동안 매일 자신이 겪었던 내용을 노트에 적은 일기는 국민방위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당시 실상을 상세하게 엿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 박물관의 설명이다.

또 석의준 씨(71)는 이웃이 버린 폐지 더미에서 발견한 1950년대 영화 잡지와 포스터 등을 기증했다. 이 밖에 2002년 열린 월드컵축구대회와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수집한 자료와 조만간 재개발 사업으로 사라지게 될 화수고개 제일기름집 간판 등 인천의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한 자료들이 기증됐다.

앞서 박물관은 4월 인천의 역사와 민속, 생활문화와 관련된 유물을 보내준 시민들을 위한 기증식을 열었다. 지난해 박물관은 시민 등 34명이 보관하고 있던 유물 296점을 기증받았다. 박물관이 기증받은 유물 가운데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고, 1919년 3월 만세운동에 참가하며 독립군을 돕는 자금을 모으는 활동을 전개했던 유두환 선생의 유품이 포함됐다.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그가 생전에 쓴 일기와 서예 작품, 가계도 등 22점을 내놓았다. 또 송림국민학교(현 송림초등학교) 졸업증서와 앨범, 상장, 사진 등과 같은 교육사 유물을 시민들이 박물관에 기증했다. 시를 대표해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에 출전한 선수단이 입었던 유니폼과 인천 연고 프로축구단인 인천유나이티드 FC의 창단 당시 유니폼도 기증됐다.

박물관은 시민들이 살아온 과거의 삶이 투영된 자료를 기증하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를 열어 유물로 결정하고 있다. 기증받은 유물을 면밀히 조사하고 유물 관리 시스템에 등록한 뒤 교육이나 학술연구 자료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민들이 흔쾌히 보내준 소중한 유물을 모아 특별전을 열기도 한다.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은 “박물관의 소장품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귀중한 유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해주신 시민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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