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문명론’은 어떻게 등장했나
4대 문명, 학계에는 없는 개념
고고학을 발달시키며 고대 문명을 조사해 온 서구 학계는 4대 문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고대 문명 연구가 본격화된 18, 19세기 서양에서는 성경의 주요 무대였던 근동과 이집트 유적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전후 일본에서 널리 채택된 4대 문명론은 별다른 검토 없이 한국에도 소개됐다. 1970년대 이후 세계사 교과서와 사회과부도에는 4대 문명이 표기됐다. 또 고고학과 문명 관련 서적들도 대부분 일본어 번역서였기에, 4대 문명이 세계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1993년 이른바 ‘단군릉’을 발굴하고, 고조선의 중심지를 만주가 아닌 평양 일대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평양 일대를 고대 한국 문명의 발상지로 설정해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 체제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더 나아가 북한 역사 교과서에는 기존 4대 문명에 ‘대동강 문명’을 추가해 ‘세계 5대 문명’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으니, 여러모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거대 문명에 가려진 문명들
지난 100여 년간 엄청나게 많은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면서 지중해의 크레타, 신대륙의 마야와 잉카, 아프리카의 대짐바브웨 등 새로운 문명이 속속 알려졌다. 또한 거대한 건축물을 중심으로 문명의 우열을 따지는 관행 역시 학계에서는 비판받고 있다. 제임스 스콧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저서 ‘어게인스트 더 그레인(Against the Grain)’에서 ‘문명=진보’라는 관점을 통렬히 비판하며, 거대한 국가의 출현이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을 통제하고 억압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많은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문명지대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먹거리가 단순해지고 신체 조건이 나빠졌으며, 노동 강도는 오히려 늘어났음이 밝혀졌다. 반면 거대한 문명이 없던 지역에서도 활발한 교역과 수준 높은 기술이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야만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유라시아 초원 루트와 실크로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더욱이 최근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배불뚝이 언덕) 발굴을 통해 1만2000년 전 빙하기가 끝나던 시점부터 이미 후대 고대 문명의 주요 기술들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4대 문명이라는 말에는 태생적으로 우월한 집단이 있고 나머지는 미개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근대 이후 유행했던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의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급격히 성장해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된 나라도 있다. 단순히 문명과 야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발달된 문명이란 지리적 환경과 주변 집단과의 관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문명 패러다임에 변화 필요한 이유
4대 문명이 동아시아에서 유독 발달한 또 다른 배경에는 유독 순위를 좋아하는 지역적, 문화적 경향도 있다. 이 용어 자체가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안티파트로스가 정리한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연상시킨다. 그는 당시까지 알려진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의 유적 가운데 일곱 개를 꼽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후 순위를 정하고 우열을 따지는 전통은 중세를 거쳐 현대까지 ‘세계 7대 경관’, ‘7대 건축물’ 등으로 이어지며 경쟁을 유발했다.
본래 세계 문화유산을 함께 보존하자는 취지의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제도 역시 어느새 동아시아 각국의 치열한 유산 지정 경쟁장이 돼 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운 자연경관이나 문화재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러한 순위에 열광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문화유산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가 수십 년간 배워온 4대 문명이라는 개념은 근대화의 열망, 서구 중심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 그리고 세계사에 대한 무지 속에서 탄생한 일종의 ‘지식의 신화’였다. 문명은 마치 객관식 문제의 정답처럼 몇몇 강에서만 시작됐다는 ‘정답 리스트’가 아니다. 괴베클리 테페, 안데스, 마야 문명처럼 오래도록 주류 서사에서 배제된 지역에서도 찬란한 지식과 기술을 꽃피웠으며, 오늘날에는 K컬처와 디지털 커뮤니티처럼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전 세계를 움직이는 문명적 동력이 솟아나고 있다.
이제 문명의 척도는 더 이상 국가나 유적의 규모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보를 교류하고 문화를 나누며 타자와 공존하려는 태도에서 문명은 새롭게 태어난다. 진정한 문명은 자신의 환경에 뿌리내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꽃피며, 그 열매를 함께 향유하는 삶의 방식에 있다. 기계화와 정보화 시대를 거쳐 인공지능(AI) 시대로 접어들며 사회에서 인간과 문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히 필요한 지금,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를 사로잡았던 ‘4대 문명론’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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