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504〉

13 hours ago 2

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

한 간(間)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

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고단한 고기와도 같다.

―김광섭(1905∼1977)

1938년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다. 김광섭 초기 시의 대표적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100년이 되었지만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그런 시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황은 그 반대다.

김광섭 시인은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었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런 이상과 현실 사이에 겪은 절망이 이 시에 담겨 있다. 그렇게 태어난 이 시는 100년을 지나오면서 여러 상황 위에서 읽힐 수 있는 시가 되었다. 시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시가 살아온 역사는 시의 지층이 된다. 이 시를 읽으면 6·25전쟁에서 죽은 아까운 목숨들이 차가운 땅 위에 누워 독백하는 듯 느껴진다. 혹은 지치고 지친 현대인들이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투쟁과 경쟁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자로 태어났지만 사실 시인이 꿈꾼 것은 물고기였다. 푸른 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존재. 마치 꼭 내 이야기 같아 눈을 뗄 수가 없다. 겨우 6줄의 시가 이렇게 여러 생각을 몰고 온다. 이건 분명 살아 있는 시다. 살아온 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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