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反이민 정책 설계자들
호먼, 오바마때부터 강경파 자처… 불법 이민자 부모-자녀 격리 추진
밀러, 트럼프 1기부터 참모로 활약… 이슬람 7개국 국민 입국 금지 주도
저커버그에 DEI 폐지 압박해 관철… 놈 “남부 국경은 불법 이민 전쟁터”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지낼 당시, 텍사스 남부 국경에 주방위군 파견
국경 장벽 건설 재개도 급물살… 민주당 상원서도 찬성 의견 나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을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취임 당일부터 강도 높은 반(反)이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멕시코와 접한 남부 국경에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불법 이민자의 망명 금지, 국경장벽 건설 재개, 교회와 학교 같은 장소에서의 불법 이민자 단속 등도 시행하기로 했다. 특히 집권 1기 때 도입했지만 인권 탄압 비판으로 중단됐던 ‘불법 이민자 부모와 자녀의 격리 수용’을 재추진하고 불법 이민 단속에 소극적인 지방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 중단, 해당 지방 공무원 기소 등도 고려하고 있다.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을 포함한 각종 ‘미국 우선주의 공약’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것은 그의 지시를 물불 가리지 않고 이행하는 ‘충성파 참모’가 백악관과 내각 곳곳에 포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경 차르(제정 러시아 황제·최고책임자를 의미)’ 톰 호먼(64),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담당 부비서실장(40),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 후보자(54)가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 정계의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베테랑 관료, 군 장성 등을 주로 기용했다. 이들은 돌출 발언 및 행동으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패배 당시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집권 1기 참모들에 대한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에 집권 2기 참모들을 ‘충성파’로만 채웠다. 이들은 ‘주군’에게 절대 ‘아니오(No)’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반이민 정책을 담당할 핵심 참모들이 누구인지 짚어 봤다.● “‘불법 이민자 부모-자녀 격리’는 인생 과업” 호먼
호먼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7년 1월∼2018년 6월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으로 일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국경 차르’로 재기용됐다.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호먼의 반이민 성향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불만과 좌절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뉴욕주 북부의 보수적인 농촌 마을 웨스트카르타고의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아버지, 할아버지까지 3대가 경찰로 재직했다.
그는 1984년 ICE의 전신인 연방이민귀화국(INS)에서 근무하며 이민 업무와 연을 맺었다. 국경순찰대 등을 거쳐 2013년 오바마 행정부의 ICE 수석 부국장을 지냈다.호먼은 2014년 “불법 이민자 수를 줄이려면 이민자 부모와 미성년 자녀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 부모와 미성년 자녀 분리 정책은 인권 탄압 요소가 너무 크다는 반대에 부딪혔다. 또 정책 논의 과정에서 추진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호먼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오바마 행정부에 큰 분노를 느꼈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의 막바지인 2016년 말 사표를 던졌다.
이런 그를 ICE 국장 직무대행으로 복귀시킨 사람이 집권 1기의 트럼프 대통령이다. 호먼은 당시 “월급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 다시 일을 시켜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돌아오자마자 불법 이민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했고 2018년 5월 ‘불법 이민자 부모-자녀’ 격리 정책을 실시했다. 다만 ‘잔혹하다’ ‘인륜에 어긋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도 “이 정책을 반대한다”고 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2018년 6월 텍사스주 맥앨런의 12∼17세 미성년 불법 이민자의 수용 시설을 찾아 아이들을 위로했다. 결국 이 정책은 철회됐다. 호먼은 그 책임을 지고 ICE 국장 대행직에서 사퇴했다.
호먼은 사퇴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난해 7월 공화당 전당대회 때 지지 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불법 이민자가 급증했다며 “당장 짐을 싸서 미국을 떠나라”고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다시 승리하자마자 호먼을 집권 2기의 ‘국경 차르’로 발탁했다. ICE 국장이 아닌 ‘국경 차르’로 발탁한 것은 인준 때문으로 풀이된다. ICE 국장은 상원 인준이 필요하다. 호먼의 강경 성향을 감안하면 공화당의 일부 상원의원이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한 조치로 풀이된다.호먼은 최근 NYT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4년 동안 최소 200만 명의 불법 이민자를 추방시키겠다”고 밝혔다. 약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미 전체 불법 이민자의 18.2%에 달한다. 또 불법 이민자를 효과적으로 걸러내기 위해 안면인식 등 최신 인공지능(AI) 기술을 사용하고, 불법 이민자를 쉽게 신고할 수 있는 핫라인 개설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불법 이민자 부모와 자녀의 격리 정책 또한 다시 도입할 뜻을 비쳤다. 특히 부모는 불법으로 거주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이 있는 그들의 자녀까지 내쫓겠다며 “가족 전체의 추방을 주저하지 않겠다. 가족 전체가 추방될지 분리될지는 당신들이 결정하라”고 엄포를 놨다. 시민권자 자녀의 미국 거주는 막을 길이 없지만 법적 권한이 없는 부모는 반드시 추방시키겠다는 뜻을 강조한 셈이다.
● “이슬람 7개국 국민 입국 금지” 밀러
“밀러가 미국 이민 정책의 결정권자라면 미국 인구는 현재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억 명에 불과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캠프에서 밀러의 초강경 반이민 성향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호먼과 함께 트럼프 1기의 반이민 정책을 주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를 시작한 2017년 1월 말 ‘테러 방지’를 이유로 시리아 이란 이라크 수단 리비아 소말리아 예멘 등 이슬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 및 비자 발급을 90일 동안 중단시키는 초강경 반이민 정책을 주도했다. “해당 7개국 국민 전체를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밀러는 미 50개 주 중 진보 성향이 가장 강한 곳으로 꼽히는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부터 지역 내 극우 라디오방송에 출연하며 반이민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듀크대 시절에는 다문화주의, 관용적 이민 정책 등을 비판하는 글을 학내 언론에 기고한 극우 논객 출신이다.
미국 여성 언론인 진 게레로는 2020년 밀러 주변인 100여 명을 인터뷰해 그의 정신세계를 파헤친 책 ‘증오 선동가: 스티브 밀러,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백인 국수주의자 어젠다’를 출간했다. 이 책에 따르면 밀러는 유년 시절부터 멕시코계 친구들에게 “영어를 쓰고 미국의 방식을 배울 수 없다면 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에 반발하는 친구들에겐 절교를 선언했다.
이런 밀러의 역할은 단순히 반이민 정책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을 관장했다. 2기 행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밀러는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한 후 4년간 충직하게 곁을 지켜 특히 신임을 얻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참모 중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2기 행정부의 청사진을 그려 왔다. 주요 상하원 의원, 영향력 있는 우파 언론인과 친분을 쌓으며 트럼프 재집권의 정당성을 설파했고 주요 기부자와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회고록 출간, 유명 대기업 자문 등 자신과의 관계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선 많은 다른 참모들과 달리 밀러가 자신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NYT는 “밀러는 절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논쟁하지 않는다. 일단 대통령이 특정 정책을 추진하면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고 그대로 따른다”고 평했다. 이를 통해 밀러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권력을 휘두르게 됐다며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비선출직 인물 중 하나”라고 평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불복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2021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에 난입했을 때 이를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로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도 정지시켰다. 이랬던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후 몸을 낮추며 대통령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저커버그는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했다. 밀러는 저커버그에게 “메타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을 폐기하라”고 압박했다.
그리고 메타는 10일 “DEI 폐기”를 선언했다. 밀러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 “국경은 전쟁터” 놈
놈 또한 반이민 성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가 다양한 이민 정책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국토안보장관 후보자에 오른 것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반이민 정책에 관심이 많은지를 잘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서부 사우스다코타주 출신인 놈은 2018년 이곳의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집권 1기의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았다. 선거 승리로 사우스다코타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주지사가 됐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국경장벽 건설, 이슬람 7개국 입국 금지 등을 강하게 지지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같은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등과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관용적인 이민정책,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을 강하게 비판하며 명성을 얻었다.
폭스뉴스에 따르면 놈 후보자는 바이든 행정부 기간 주도(州都) 피어에서 1600km 이상 떨어진 텍사스주 남부 국경에 5차례 사우스다코타 주방위군을 파견했다.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애벗 주지사가 “텍사스 인력만으로는 불법 이민자를 다 차단할 수 없다”며 도움을 청하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놈 후보자는 주지사 시절부터 줄곧 “남부 국경에서 불법 이민, 마약, 인신매매 등이 판치고 있다”며 이곳을 ‘전쟁터(warzone)’라고 표현했다. 17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도 ‘전쟁터’를 거듭 거론했다. 그는 “불법 이민으로부터 조국을 보호하는 것이 국토안보장관의 핵심 업무”라고 밝혔다.
● 국경장벽 건설 재개, 교회·학교 단속 등 급물살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공언해 온 국경장벽 건설 재개 또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멕시코와 맞닿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주 등에 727km(452마일)의 국경장벽을 건설했다. 당시 약 150억 달러(약 21조5000억 원)의 정부 예산이 쓰였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1년 1월 취임 첫날 “모든 국경장벽의 건설을 중단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추가 건설이 2년간 중단된 채 방치됐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가 급증하자 바이든 행정부 또한 2023년 10월 텍사스주 리오그란데강 일대에서 32km(20마일)의 장벽 건설을 재개했다. 현실적으로 불법 이민자의 월경을 막을 방법은 장벽밖에 없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장벽 건설 재개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밀러가 공화당의 주요 상하원 의원과 만나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킬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러는 정계 입문 초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법무장관을 지낸 제프 세션스 전 공화당 상원의원의 참모로 일해 의회 업무에도 능통하다.
민주당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특히 남부 국경을 지역구로 둔 민주당 의원들은 지역 여론을 의식해 반이민 정책에 호응하고 있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크 켈리 상원의원(애리조나) 등 민주당 상원의원 13명이 “국경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이민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의제를 강조하는 것을 두고 “미국 유권자가 ‘스트롱맨’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다시 뽑은 것은 ‘불법 이민이 고물가 등 경제난을 악화시켰다’는 그의 주장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라며 “스트롱맨의 모습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반이민 정책”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며 이민자도 많은 일리노이주 시카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같은 지역을 집중 타깃으로 삼는 것, 학교와 교회같이 그간 불법 이민자 단속을 자제해온 장소에서도 강도 높은 단속과 체포를 실시하려는 것 역시 ‘스트롱맨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적인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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