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접점 … 워싱턴서 총력전 펼치고 귀국
정부, 투자펀드 장기 분납안
현금 대신 대출·보증 카드로
美 고위급 잇따라 만나 설득
APEC서 공동선언 발표하고
세부협상은 11월 이후 가능성
트럼프, 中엔 유화적 메시지
"中도 157% 관세 원치않을것"
오는 10월 말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려던 한국 정부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한국 고위급 대미 협상팀이 총출동해 미국과 전방위 협상을 벌였지만 가시적인 결과물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는 안보와 경제 문제를 종합한 큰 틀에서의 공동선언문(Joint Statment)만 발표되고, 세부적인 관세협상은 11월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19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최근 근로자 구금 사태가 발생한 조지아주 현대자동차 공장 등을 방문하고 20일 오후 한국으로 돌아온다.
지난주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총출동했지만 한미 간 구체적인 타협점은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워싱턴DC 방문 과정에서 한국 협상팀은 미국 각료들을 만나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로 조성될 대미 투자펀드의 '선납' 문제를 집중 협의했다.
한국 측은 외환보유액(4220억달러)에 근접하는 수준의 대규모 달러 자금이 대미 투자펀드 조성으로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 원화가치가 급격히 절하될 수 있다며 10년 이상 장기 분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한국 측은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해 현금·지분 투자보다는 대출·보증 위주로 투자하는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총리는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본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실무 장관은 (한국 입장을) 이해하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서 얼마나 수용될지는 진짜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초 이번 협상은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총출동하며 타결 기대감을 높였다. 구 부총리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집중 마크했다. 김용범 실장, 김정관 장관, 여한구 본부장 등 3명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집중 공략하며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
지난 7월 31일 무역합의 과정에서도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워싱턴DC를 방문해 극적 타결을 이룬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측이 한국 역제안에 대해 직접적 반응을 내놓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하던 중 취재진에게 "유럽연합(EU)도 포함되고, 일본과 한국 등으로부터 우리나라가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며 "그 '공정하게'라는 것은 미국으로 수천억, 심지어 조 단위 달러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한미 간 관세협상과 관련된 줄다리기가 더 이어질 것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이로 인해 당초 정부가 목표로 했던 이달 말 APEC 정상회의 전 관세협상 타결도 달성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정상회담을 열흘 앞둔 상황에서 관세 관련 업무협약(MOU)이 맺어지기 위해서는 이번 주말까지는 실무진의 문안 합의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때문에 APEC 정상회의에 앞서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선 큰 그림에서의 공동선언문이 우선적으로 발표되고 세부적인 관세협상은 다음달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동맹국인 한국과 한 치의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중국을 향해선 유화적인 분위기의 협상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의 거센 무역 반격에 처한 미국으로선 한국보다는 중국과의 관세협상 타결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재진에게 "중국은 약 157%의 관세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매우 강력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협상을 앞두고 중국에 대한 초고율 관세를 예고하며 기선제압에 나선 것이지만 협상 타결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래서 그들은 대화를 원하고, 우리는 대화하고 있다"며 "우리는 양측 모두에 좋은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인선 기자 / 나현준 기자 / 뉴욕 임성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