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들 사이에서 혼전계약 보편화 추세
결혼생활 규칙담고 이혼 땐 재산 분할 초점
불안감과 통제성향이 혼전계약 작성 이유
혼전계약 보장 핵심 조건은 침묵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오는 26일 약혼녀 로렌 산체스와 재혼하면서 혼전 계약서에 대한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베이조스는 2019년 이혼할 때 전 부인인 맥켄지 스콧에게 350억달러(47조7500억원)에 달하는 위자료를 지급했다. 당시 두 사람은 자산 분할을 위한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계 3위 부자 베이조스가 이번 결혼에서는 혼전 계약서를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조스의 자산은 약 2000억달러(272조 6400억원)에 달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시간) ‘초 부자들의 복잡하고도 사소한 혼전계약서 내막’이란 제목으로 부유층들의 혼전계약서 문화를 소개했다.
부유층들 사이에서 혼전계약은 점점 더 보편화되는 추세다. 계약서 내용은 다양하고도 세세하다. 누가 전용기를 이용할지, 순종 말을 어떻게 돌볼지 등 혼인 생활 중에 지켜야 할 내용이 담긴다. 어떤 의뢰인은 배우자가 특정 체중을 유지하고 결혼 기간 중 일주일에 네 번은 운동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한다. 불륜 건당 100만달러 배상 등의 처벌 조항을 넣기도 한다.
이처럼 혼전계약은 부부의 원활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담지만, 혹시 모를 이혼 시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순 자산이 1억달러(1365억원)가 넘는 사람들에겐 혼전 계약이 이혼 시 자산과 사업체, 가문을 보호하는 법적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공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는 스타트업 자본, 사모펀드 보유 지분, 지적 재산권에서 발생하는 로열티, 복잡한 분배 규칙이 있는 가족 신탁 등 쉽게 분할하거나 매각할 수 없는 자산이 주로 다뤄진다.
미리 이런 계획을 세워놓지 않으면 자산의 유동성이 부족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합의금 마련을 위해 회사 주식을 매각하며 상당한 양도 소득세를 내야 하고, 의결권 주식을 분할하면 회사 지배권이 이전될 수도 있다. 배우자 간 자산 이전엔 예상치 못한 세금 부담도 덩달아 생긴다.
미국 뉴욕에서 매년 1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수십 건의 혼전계약을 처리하는 로버트 코헨 변호사는 “부유층들은 자신들의 재산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어떤 것도 허용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 부유층의 경우 여러 국가에 여러 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혼전 계약이 모든 국가에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게 규칙을 추가하기도 한다. 배우자가 이혼 소송을 다른 나라에서 제기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코헨 변호사는 “최근 전 세계 8개 관할권의 변호사들의 협의해야 하는 사건을 맡았다”며 “해당 관할권의 변호사들이 계약 내용을 검토해 문제 발생을 막는다”고 말했다.
자산 분할뿐만 아니라 이혼 시 개인 소지품 포장을 누가 할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누가 이혼에 대해 밝힐지 등도 일일이 정한다.
사실 혼전 계약서의 자녀 양육권과 부양비 규정 부분은 정작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부유층들이 배우자에게 돈을 나눠주지 않으려고 혼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아니다. 한 변호사는 “보통 단계적 합의를 하는데 결혼 5년 후 이혼 시 500만달러, 10년 후엔 2000만달러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유층들은 막대한 자산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혼전 계약서를 작성한다. 뉴욕의 낸시 켐톱 이혼전문 변호사는 “모든 혼전 계약은 권력다툼”이라고 말했다. 플로리다의 조디 퍼 콜튼 변호사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대개 삶의 모든 측면을 완벽히 통제하는데 익숙하다”며 “그들은 종종 불편함과 불확실성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혼전계약서 보장의 필수 조건은 침묵이다. 전 배우자가 사적인 세부 사항, 재정 기록, 또는 당황스러운 사적 이야기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한다. 혼전 계약 웹사이트인 ‘헬로프레업’의 공동 창업자인 더그 줄리안은 “비밀유지 계약서, 혼전 계약서 자체의 존재조차 공개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베이조스 대변인은 혼전계약서 유무와 그 내용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