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출하고 나서 제품 PC(퍼블리시티 컨설팅)를 진행했는데 판매량이 엄청 늘었습니다." 한 중국 TV 브랜드 측 관계자는 최근 국내 소비자들 반응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또 다른 중국 브랜드 관계자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제품을 선보인 이후 판매량이 꾸준히 잘 나오고 있다"고 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TV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들이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성능도 대폭 개선한 제품을 앞세워 소비자들 공략에 나섰다.
중국 TV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격경쟁력이다. 서울의 한 가전매장에선 65인치 TV 기준으로 TCL을 129만원대에 판매하는 반면 삼성·LG 제품은 200만원 중반대에 내놨다. 샤오미의 가격 정책은 더 파격적이다. 샤오미 여의도 오프라인 매장은 65인치 TV를 7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삼성·LG전자 제품에 비하면 최대 65%가량 저렴한 가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격경쟁력 측면에서는 한국 브랜드가 중국 브랜드를 따라가야 하는 입장이다. 가격경쟁력만 놓고 보면 중국 브랜드들을 앞서긴 어렵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 대비 화질 선명"…고물가에 中 TV 선택
소비자들이 느끼는 '물가 부담'도 중국 브랜드 인기를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최근 프로모션 등에 적극 반응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물가 부담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실제 구매 결정에 반영되는 여러 기준 중 가격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 가격뿐 아니라 품질도 주목받고 있다. 중국 브랜드들이 내놓는 프리미엄 TV의 경우 실제 사용경험에서 "별다른 차이를 못 느낀다"는 소비자 후기가 적지 않다.
한경닷컴이 생성형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뉴엔AI에 의뢰해 'TV 브랜드에 대한 국내 소비자 인식'을 분석했더니 중국 제품에 대한 긍정평가 비중이 부정평가를 적게는 3배, 많게는 18배 이상 압도했다. 작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외 브랜드 32개 대상으로 온라인상에 언급된 TV 관련 키워드 등 총 385만9455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중국 TV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 반응을 종합하면 "저렴한 가격 대비 선명한 화질과 깨끗한 음질을 제공한다", "미니 LED의 압도적 화질과 명암 디테일이 살아난다",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갖췄다"는 등의 평가로 요약됐다.
최근 주요 제조사 간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RGB TV'의 경우 한국 브랜드 제품에도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RGB TV는 백라이트 기술을 기존 백색 광원에서 초미세 빨강(R), 초록(G), 파랑(B) LED(발광다이오드) 소자를 사용하는 최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이다.
올해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5'에서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115형 RGB 마이크로 LED TV를 공개했다. 중국 브랜드 TCL도 163형 RGB 마이크로 LED TV와 세계 최대인 115형 QD(퀀텀닷)-미니 LED TV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이센스는 RGB 미니 TV와 마이크로 LED TV로 프리미엄 TV 경쟁에 참전했다. RGB 마이크로 LED TV는 RGB 미니 LED TV보다 한 단계 높은 사양이다.
"소비자들, 반중 같은 정서적 기준보다 가격·품질 중시"
제품 자체만 놓고 구매를 결정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반중 정서'도 종전에 비해 덜해지는 추세다. 유형 재화의 경우 소비자들이 정서적 기준보다 가격과 품질을 중시해 구매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얘기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TV 같은 유형 재화의 경우 소비자들이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고물가 시기에는 구매 품목을 제한 둬야 하는 상황"이라며 "반중 정서와 분리해 상품 자체를 보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말했다.
한국 브랜드는 인공지능(AI) 스마트홈 연동과 같은 소프트웨어·서비스 역량으로 차별화를 두거나 새로운 제품군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더 이상 TV 시장에서 '가격'과 '화질'로만 경쟁하지 않는 것. 하드웨어 경쟁력을 넘어서는 사용성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달리 말하면 가격이나 화질만으로는 중국산 제품과 확연한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내기 어려워진 상황이 된 셈.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TV를 단순 영상 시청기기를 넘어서는 가전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며 "최근 영상을 휴대폰, 태블릿 PC 등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기존에 없던 기능으로 TV 제품의 차별화를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브랜드들은 신규 제품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대응하고 있다. LG전자의 이동형 무선 스크린 '스탠바이미'가 대표적이다. 스탠바이미2의 경우 출시 후 3개월간 판매량이 전작보다 8배 더 높게 나타났다. 삼성전자도 유사한 이동식 제품 '더 무빙스타일'을 내놨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시장을 열면 어느 정도 가격대가 높아도 소비자들이 수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TV 시장에서 영역을 개척해 수익 부문을 다변화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국 브랜드가 프리미엄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중국 브랜드들이 중저가 부문에서 공세를 강화해 시장이 양분화되는 구도가 뚜렷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양국 브랜드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라며 "한국 브랜드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지키기 위해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소비자에게 신뢰와 경험을 결합한 '총체적 가치'를 제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