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전 신뢰 회복으로 금융 시장을 안정시킨 콘스탄티누스 황제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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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전 신뢰 회복으로 금융 시장을 안정시킨 콘스탄티누스 황제 [특별기고]

김상규

입력 : 2026.05.04 18:02

콘스탄티누스 황제 조각상

콘스탄티누스 황제 조각상 출저=위키백과

정책은 ‘선택과 집중, 신뢰회복’을 통해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한정된 재원을 흩어버리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성공을 바랄 수는 없다. 로마를 중흥시킨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이러한 원리를 잘 활용한 탁월한 행정가였다.

그는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솔리두스(Solidus)’란 금화를 유통시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경제적 안정을 이룩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은 전임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실패한 가격 통제정책(301년)이 반면교사 를 한 것 같다. 그가 넘어진 자리를 콘스탄티누스는 깊이 성찰했을 것이다.

당시 로마의 화폐 시스템은 붕괴 직전이었다. 3세기초 세베루스 황제 때 50%이던 은의 순도가 3세기 말인 디오클레티아누스 때는 1%로 떨어졌다. 특히 야만족의 침입과 내란이 극심했던 3세기 말에 급격히 하락했다. 그 결과 똑 같은 물건을 구입하는데 더 많은 동전이 필요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병사들의 충성심과 실질보수를 보장해야하는 군인황제들은 더 많은 화폐를 발행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존 은광이 고갈되고 야만족에 빼앗겨 은의 공급까지 줄어들었다. 은화의 순도를 더 낮출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다시 인플레이션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이러한 인플레이션을 가격통제와 강력한 처벌로 다스리려 했다. 전쟁과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시장에 대한 국가관리와 통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301년의 가격 통제칙령도 이러한 관리경제의 확대 추세와 강력한 행정력으로 제국을 구했다는 자신감의 결과였다. 하지만 1400여개 품목에 대한 포괄적인 가격통제는 암시장의 창궐과 물물교환경제를 낳고 말았다.

상인들은 팔수록 손해를 보게 되자 시장에 물건을 내놓지 않았다. 물건은 구하기 힘들었고 가격은 치솟았다. 시장이 사라지니 세금도 거두기 힘들어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가격통제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인플레이션을 상인과 투기꾼의 탐욕 탓이라며 시장과 싸우려 했고, 인간의 탐욕을 처벌과 통제로 쉽게 꺾을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그는 시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가격관리정책 대신, 시장을 이용하는 방안을 택했다. 중국 전국시대에 상앙이 나무기둥을 남문에서 북문으로 옮긴 사람에게 포상함으로써 정부의 신뢰를 회복했듯이, 백성이 믿을 수 있는 화폐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가치가 떨어진 기존의 구리혼합 은화는 그대로 사용하게 했다. 대량 유통되고 있는 수많은 동전의 신뢰성을 올리기에는 재원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신 ‘솔리두스’란 새로운 금화의 유통에 역량을 집중했다. 순도 99%의 금화를 지속적으로 발행하면 그 금화가 기준통화 역할을 해서 시장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관건은 순수 금화를 만들 황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있었다.

처음에는 전쟁 전리품을 활용했으나, 이후 제국내에 있는 전통사원의 황금을 금화주조에 사용했다. 전통사원의 재산을 징발하는 것은 사람들의 큰 저항을 부를 수 있었으나, 황제가 가진 폰티펙스 막시무스(대신관)라는 직위가 도움이 되었다. 대신관은 “국가종교의 수장”으로서, 국가의 안녕을 해치거나 비도덕적이라고 판단되는 이교사원을 폐쇄하고 재산을 수용할 수 있었다.

당시 전통사원들은 국가종교의 형식적 의례만 집전했을 뿐, 신앙의 열정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었고, 신흥관료나 귀족들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선호가 가시화됨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었다. ‘종교적 정화’란 명분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내전 승리후의 살벌한 상황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황제는 금과 은으로 된 사원의 신상 등을 ‘솔리두스’ 주조에 사용하면서, 새로운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건설과 국토방위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낡은 종교의 재산이 새로운 체제의 경제 기반으로 전환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솔리두스 금화의 지속 가능성을 확실히 담보하기 위해 ‘금화세’란 목적세를 도입했다. 금화의 주된 사용자인 大상인, 대부업자와 장인 등에 부과되었기 때문에 수익자 부담이라 할 수 있어, 금화의 순도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확립되었다.

이렇게 해서 솔리두스 금화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7백년 이상 유럽의 표준금화가 되었다. ‘중세의 달러’가 된 것이다. 서민들이 사용하던 구리혼합 은화는 때때로 그 가치가 출렁거렸지만 솔리두스 금화가 기준을 잡아줘서 시장은 안정될 수 있었다.

솔리두스란 금화의 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콘스탄티누스대제의 전략은 적중했다. 그 결과 로마의 인플레이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그는 통제보다는 시장의 ‘신뢰(信)’를 회복해야 ‘경제(食)’가 살아나고 ‘안보(兵)’가 유지된다는 식병신(食兵信)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김상규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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