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안 검토하고, 거듭 편의성 검증…100년 전 박두성의 ‘훈맹정음’ 창안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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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맹정음’(1926년). ‘맹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을 담아 작성한 한글 점자표다. 한글 점자는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을 구분해 받침이 있는 한글의 특성을 반영했다. 외워 쓰기 쉽게 규칙적으로 점을 배열했다. 1923년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 조직 후 제자들과 한글 점자를 연구한 지 3년 만인 1926년에 발표됐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제공 송암 박두성 육필원고(한기5714) 중 ‘국어에 실제로 쓰이는 자모의 수량’ 부분.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100년 전, ‘가갸날’(한글날) 제정과 함께 우리 글의 역사에 큰 걸음이 내딛어졌다. 시각장애인 교육을 위해 헌신한 송암 박두성(1888~1963)이 1926년 11월 4일 제자들과 함께 연구한 한글 점자를 ‘훈맹정음(訓盲正音)’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송암의 점자 창안 과정은 “배우기 쉽고, 점 수효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는 것 말고는 구체적인 내용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9일 한글날을 앞두고 ‘훈맹정음의 유래’ 등 그가 남긴 육필 원고 3종(국립한글박물관 소장)을 통해 당시 치열했던 훈맹정음 창안의 과정을 살펴봤다.● “외국 문자 몰라도 배울 수 있어야” 제판기(1933년). 점자를 금속 인쇄판에 찍어내는 기계다. 인쇄판을 제판기에 고정시키고, 점자 한 글자를 자판으로 친 다음 발로 패달을 밟아 새긴다. 1933년 일본맹인협회에서 기증한 제판기로 박두성이 사용했다. 송암점자도서관 소장품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제공 강연민 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원고 분석에 따르면 박두성은 훈맹정음을 만들기 위해 초기 안인 ‘32점식’을 포함해 12개의 한글 점자 고안(考案)을 검토했다. 영문 ‘브레일 점자’를 그대로 쓰는 안과 일본 가나 점자를 활용한 안, 평양의 ‘뉴욕 포인트식’을 되살리자는 안, 송암 자신이 낸 전환식(轉換式) 등이었다.박두성은 “실제로 점의 수(數)가 많이 찍히는 것은 감당키 어려운 고통”이라며 여러 안을 실제 사용되는 문서에 적용해 효율성을 살폈다. 문서는 특정 문체에 치우치지 않도록 공문(교육 칙어 역문)과 교과서(보통학교 조선어독본 3권 1과), 종교 문헌(신약성서 유다서), 실용서(보통학교 통신부 주의서) 등 4종을 골랐다.표본으로 삼은 문서의 2344자를 각 안으로 적었을 때 ‘점의 총 수’를 헤아리니, 영문자대로 쓰는 안이 가장 많았다(1만6739점). ‘제안자 미상’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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