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사이트에서도 계속 가격이 뛰고 있어요. 얼른 사고 싶어요.” 30일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소재 포스코센터(포스코차이나) 1층 팝마트(파오파오마터·泡泡瑪特)에서 만난 20대 직장인 양모씨는 라부부 인형을 얼른 갖고 싶다면서 발을 동동거렸다.
옆에서 제품들을 둘러보던 30대 자영업자 장모씨도 “집이나 가게에 걸어두면 볼 때마다 행복해진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팝마트 매장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미·중 관세전쟁이 치열한데도 중국 장난감 업체 팝마트 인기가 연일 치솟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 관세 투하를 이어가면서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졌지만 없어서 못 파는 ‘품절 대란’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 둔화와 높아지는 실업률에 20~30대를 중심으로 감성 소비 열풍이 확산되고 있는 영향이다. 여기에 빠르게 커지고 있는 키덜트(키즈+어덜트) 시장까지 맞물려 팝마트의 브레이크 없는 고공행진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이날 홍콩증권거래소에 따르면 팝마트 주가는 올 들어서 111.96% 급등한 193.2홍콩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근 1년으로 넓혀보면 주가가 469.91% 뛰면서 2020년 12월 상장 이후 최고가를 달리고 있다.
고공행진 주가로 ‘장난감 신화’ 등극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파는 팝마트는 2010년 설립 이후 빠르게 입지를 구축했다. 대표 캐릭터 몰리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했다. 현재는 중국 본토에 370여개 매장뿐 아니라 홍콩, 마카오, 대만 등 해외에도 90여곳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팝마트는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고급스러운 피규어 제품을 내용물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박스에 넣어파는 랜덤 박스 전략으로 팬덤을 꾸렸다.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랜덤 박스를 구매해야 희소성이 큰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팝마트는 유난히 재구매율이 높고 충성 소비자가 많은 편이다. 기존엔 미국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만화 속 캐릭터를 제품화한 게 일반적이었다면 팝마트는 사실상 순수 창작물에 가까운 독립 제품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높이 7~8cm 미니 피규어가 주력인데 가격은 69~79위안(약 1만3000~1만6000원) 정도다. 크기와 희소성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팝마트 애호가인 40대 직장인 곽모씨는 “랜덤 박스 안에서 어떤 제품이 나올지 모르는 것 자체가 흥분된다”며 “랜덤 박스를 개봉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이라고 말했다.
팝마트는 지난해 130억4000만위안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6.9% 증가했다. 조정순이익은 34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185.9% 증가했다. 중국 본토 매출이 79억7000만위안으로 전년 대비 52.3% 증가했는데 홍콩, 마카오, 대만 등 해외 사업 매출은 50억7000만위안으로 전년 대비 375.2% 급증했다. 매출의 약 40%가 해외에서 나왔다.
올해도 호실적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최근 중국 애니메이션 영화 ‘너자2’ 관련 캐릭터 블라인드 박스 제품이 품절 대란을 일으킨 데다 라부부 매출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렴 블룸버그통신은 “월트 디즈니나 헬로키티로 유명한 산리오 등 글로벌 기업을 제치고 올해 가장 빠르게 성장한 중국 기업”이라며 “홍콩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 중 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랜덤 박스로 감성 소비 공략
팝마트의 급성장 뒤엔 중국 경제의 암울한 현실도 자리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에 비해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면서 청년 실업률이 급증하고 직장인들의 심리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30대 이상 소비자들이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팝마트에 열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털이 복슬복슬하고 삐죽삐죽한 이빨과 장난기 넘치는 귀를 갖고 있는 라부부는 직장인들이 ‘최애’(가장 좋아하는) 제품으로 등극했다. 라부부는 블랙핑크의 케이(K)팝 스타 리사가 공개적으로 애정을 표현한 뒤 인기가 더 높아졌다. 최신 라부부는 출시 즉시 거의 매진되고 있다.
중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중고 거래 온라인 사이트인 알리바바의 센위에선 라부부 가격이 평균 99위안에서 1310위안으로 올랐다. 럭이라는 이름의 희귀 라벤더색 라부부는 150위안에도 판매됐다. 지난해 스케이트보드 브랜드 반스와 함께 출시한 한정판 제품은 599위안이던 정가에서 현재는 약 1만4800위안에 판매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청년들은 온갖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를 해소할 욕구가 큰 상황에서 복권을 긁을 때 느끼는 설렘과 예쁜 피규어에서 나오는 정서적 위로를 팝마트가 대신 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젊은층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흐름 속에서 팝마트가 정서적 안정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치품의 두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월가에선 팝마트의 성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팝마트 매출이 전년 대비 47%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뱅크오브아메리카 역시 해외 매출 비중이 내년까지 55%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씨티은행은 중국 IP 시장에서 소비자 1인당 지출 수준이 여전히 선진국 대비 낮아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미국과 장기화하고 있는 관세 전쟁은 팝마트 성장에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글로벌 소비자들의 호응에 발맞춰 팝마트는 올해부터 미국 내 매장 확대를 계획하고 있어서다. 실제 팝마트는 미국과 중국간 관세 전쟁으로 이익 마진이 빠르게 줄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내 라부부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베트남으로 생산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제시 쉬 도이치뱅크 애널리스트는 “고성장 기간 동안 공급망 관리 압박과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인해 이익 마진이 낮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