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한화·두산그룹 시가총액이 조선·방산·전력 투자 확대라는 글로벌 ‘메가트렌드’를 타고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HD현대·한화가 시총 100조원을 최근 돌파한 데 이어 두산그룹도 ‘원전 르네상스’를 타고 50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흐름이 장기간 꺾이지 않는다면 세 그룹이 LG 등 전통적인 상위 그룹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한화·두산 기업가치 급증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글로벌 원전과 조선, 방산 수요 증가에 힘입어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그룹 시총이 급증하고 있다. 이날 두산그룹 시가총액은 52조6321억원으로 지난 3월 말(29조3733억원) 대비 79.2%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11위였던 그룹 시총 순위는 7위로 뛰어올랐다.
그룹 주축인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글로벌 원전 확대로 올해 들어 191% 오르면서 시총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한때 ‘정책 피해주’로 불리던 원전은 최근 글로벌 에너지산업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미국이 대형 원전 10기를 포함해 2025년 원자력발전 용량을 네 배로 늘리기로 했고, 유럽 주요국이 탈원전 정책을 속속 폐기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 원하는 결과물을 만드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을 내세운 한국 원전업체 일감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한화그룹은 시총은 이날 종가 기준 101조1988억원으로 지난 3월 말 대비 43.9% 커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3.31% 하락했지만 태양광 대장주인 한화솔루션이 22.99% 급등하면서 전날 올라선 ‘100조 클럽’ 자리를 지켰다.
한화그룹 역시 글로벌 트렌드인 조선과 방산 랠리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방산)와 한화오션(조선)의 주가 상승률은 올 들어서만 181.5%, 112.6%에 달한다. ‘신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 정책이 글로벌 무기 수요를 크게 자극한 결과다. 3월 말 70조3331억원이던 한화그룹 시총은 두 달여 만에 43.9% 불어났다. 같은 기간 시총 순위는 8위에서 6위로 올랐다.
글로벌 조선사와 전력기기 계열사를 거느린 HD현대그룹 시총은 이날 종가 기준 107조5932억원(5위)으로 3월 말 대비 55% 증가했다. 조선업 최대 라이벌인 중국을 미국이 견제하고, 글로벌 전력망 확충에 따른 전력기기 공급 부족이 심해지며 그룹 시총을 밀어 올렸다.
◇ LG그룹 위협 “순위 바뀔 수도”
HD현대·한화·두산 세 그룹은 전통의 상위 그룹 시총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국내 그룹사 4위인 LG그룹 시총은 2023년 말 186조3286억원, 작년 말 142조2499억원, 이날 131조9982억원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룹 내 비중이 가장 큰 LG에너지솔루션이 2차전지 분야에서 중국과 힘겹게 경쟁하고 있고, 오랜 핵심 사업인 가전은 점차 부가가치가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를 사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HD현대 시총은 LG그룹의 절반이었지만 지금은 82%까지 올라왔다. 격차는 67조원에서 24조원으로 좁혀졌다.
3위 현대차그룹 또한 보호무역과 자율주행 기술 관련 주도권 상실 우려로 시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작년 말 시총 규모가 132조원이었는데 이날 종가 기준 시총은 153조1558억원으로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시총 증가는 주축인 자동차보다 방산 계열사 현대로템의 급등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조선과 방산, 원전의 글로벌 슈퍼사이클이 장기간 이어질 조짐”이라며 “이런 추세를 등에 업은 그룹사의 시총 순위가 기존 최상위 그룹사들을 누르고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