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 문제 진전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히면서 중동 전쟁 종결 후 북·미 간 대화 기류가 형성될지에 관심이 모인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구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해 나가는 '피스메이커론'을 재차 꺼내 들면서 남북 관계 긴장 완화와 북핵 문제 해결 등을 위해 미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과 직접 협상을 원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도를 감안한 현실적 해법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현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3차장은 17일(현지시간) 프랑스 현지 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최한 (G7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동맹, 중동 정세 및 한반도 문제를 포함한 지역 및 글로벌 현안에 대해 긴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번 회의 초청국 정상 자격으로 지난 16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에비앙레뱅에 합류해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만나 한반도 평화 방안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16일 정상 단체 기념사진 촬영 때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문제로 짧은 대화를 나눴고, 이날 저녁 정상회의 공식 만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옆자리에서 대화를 이어 갔다.
특히 정식 양자 정상회담 형식은 아니었지만 정상들이 함께하는 공식 만찬에서 한미 정상의 자리가 나란히 배치되면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대화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웬만한 정상회담 버금갈 정도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한미 정상 간 만남은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여 만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다양한 계기에 만들려 했는데 일정이 너무 촉박했다"며 "양측 간 구체적 날짜를 사전에 협의하기도 무척 힘들었는데, 만찬에서 옆자리인 걸 알게 되면서 별도 회담을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만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남북 관계의 근황을 물었고, 이 대통령은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중동 전쟁을 해결한 것처럼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오 차장은 "이 대통령은 중동 지역에 이어 한반도에서도 지속가능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과 관여를 기대한다고 했다"며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오랜 지정학적 역사와 남북 관계 현황 등에 대해 다양한 관심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는 중동 전쟁 종전을 일단락 지은 이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과 역할을 당부한 것으로 해석됐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외 성과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정치적으로 활용해볼 만한 카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싱가포르에서 나란히 걷는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당시였던 2018년 6월 성사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한 장면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미 워싱턴DC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만남을 제안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며 피스메이커론을 처음 언급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강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등 양 정상이 함께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기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했다고 오 차장은 전했다.
한미 정상은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 조선 협력을 놓고서도 의견을 나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조선 협력 논의가 한국 내 핵잠수함 자체 건조 등 기존 합의 사항과 연계돼 논의됐느냐'는 질문에 "조선을 포함한 한미 합의에 대해 양 정상 간에 깊은 신뢰와 기본적인 공감대가 있었다"며 "한미 간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는 데는 특별한 이견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미 정상은 3000억달러(약 455조원)에 달하는 이란 재건 기금을 놓고서도 머리를 맞댔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일본은 물론 미국 기업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정부 차원은 아니더라도 한국 기업이 이란 재건에 돈을 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내에서 자유롭고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제사회의 노력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지·역량이 있다고 말했다"며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도 정상회담을 열고 우리 기업들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 수주를 측면 지원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방산 강국인 한국이 신뢰에 기반해 캐나다의 안보 역량 강화에 적극 기여해 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카니 총리는 "한국과의 협력 관계 형성을 중시한다"면서 "관련 사항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자"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카니 총리 간 만남은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도입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이달 중 예정된 상황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캐나다 해군이 2030년대 중반 퇴역할 예정인 빅토리아급 잠수함 4척을 대체하는 사업이다. 최대 6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이번 잠수함 사업을 놓고 한국 한화오션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가 최종 경쟁 중이다.
한편 G7 정상들은 공동선언을 내고 북한을 향해 완전한 비핵화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사전 의제에는 한반도 언급이 없었는데, 이 같은 내용이 공동선언에 등장한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 부문에서는 북한 관련 내용이 전체 내용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졌다.
[에비앙레뱅 오수현 기자 / 서울 성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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