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가격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다른 귀금속인 백금 가격도 크게 올랐다.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금이 급등한 영향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업종에서 산업재 수요가 급증한 요인도 있다.
◇은과 백금 동반 상승세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은 선물(7월 인도분) 가격은 10일 트로이온스당 37.02달러까지 올랐다. 1년 전보다 24.2% 상승한 수치다. 은 선물이 37달러를 넘어선 것은 2012년 2월 29일(37.23달러) 이후 13년3개월 만이다. 백금 가격도 동반 상승세를 보였다. 백금 선물(7월 인도분)은 이날 트로이온스당 1231.70달러를 찍었다. 전년 대비 26.8% 올랐다. 2021년 2월 이후 4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귀금속 랠리에 국내 증권사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은과 백금 관련 펀드 수익률도 순항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KODEX 은 선물(H) 상장지수펀드(ETF)’의 최근 6개월 수익률은 13.43%를 기록했다. ‘KB 레버리지 은 선물(H) 상장지수증권(ETN)’은 같은 기간 21.75% 올랐다. ‘한투 플래티넘 선물 ETN’은 지난 6개월 동안 20.63% 상승했다.
최근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가 두 귀금속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국채와 달러 약세, 글로벌 무역 갈등, 미국 정부 재정 불안 등의 이유로 안전자산 수요가 급증했다. 첫 번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가격이 지난 4월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3500달러를 넘어섰다. 금의 강세가 은과 백금 등 다른 귀금속 가격에도 영향을 줬다. 최근 금값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상승 폭이 작았던 은과 백금이 대체제로 부각되며 투자가 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금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찍고 3200~3300달러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산업재 수요도 은과 백금의 가격 상승세를 자극했다. 은은 태양광 패널, 전자제품 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쓰인다. 글로벌 은 연구단체 실버인스티튜트는 1월 올해 산업용 은 수요는 처음으로 7억 온스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글로벌 태양광 발전 설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백금은 산업용 수요의 40% 정도가 자동차의 촉매 변환기 제조에 쓰인다. 촉매 변환기는 엔진에서 배출되는 유해한 배기가스를 정화하는 장치다. 백금은 이 장치의 필수인 촉매 역할을 한다. 세계백금투자협의회(WPIC)는 환경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올해 자동차 부문의 백금 수요가 전년보다 2% 늘어날 것으로 봤다.
◇계속 오를까
두 귀금속의 공급 부족도 가격 상승 요인으로 지목된다. 실버인스티튜트는 올해 글로벌 은 광산의 생산량은 8.4억온스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폐기물 재활용 등으로 2억 온스 규모가 추가로 공급된다. 하지만 전체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올해 은의 총수요는 12.2억 온스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백금도 마찬가지다. 주요 생산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생산량이 줄고 있다. 전력난, 노후화한 광산 인프라, 광산 투자 감소 등의 영향이다. WPIC는 올해 백금 생산량은 전년보다 2~6% 감소해 최근 5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가격 전망은 엇갈린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무역 갈등 등으로 가격 변동성이 클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자산운용사 위즈덤트리의 니테시 샤 상품전략가는 “은은 다른 금속의 채굴 부산물이기 때문에 가격이 상승해도 공급을 바로 늘릴 수 없다”고 분석했다. 파와드 라자크자다 시티인덱스앤드포렉스닷컴 시장분석가는 “장기적으로 산업용 소재로 은 수요가 증가하면 은 가격이 40달러 또는 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귀금속 컨설팅업체 CPM그룹의 제프리 크리스티안 대표는 올해 백금 가격이 900~1000달러 선에 머무를 것으로 봤다. 전기차 보급 증가와 글로벌 제조업 둔화 등으로 백금 수요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