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가문의 욕망과 좌절
佛 나폴레옹3세 왕후가 애용해
파리 럭셔리의 중심으로 우뚝
창업자 3세 루이·피에르·자크
도금 시대땐 美신흥부자 겨냥
대공황기엔 러·인도로 눈돌려
런던·뉴욕까지 사업 확장시켜
英왕실서 "보석상의 왕" 극찬
전 세계 현대 럭셔리 트렌드를 지배해왔던 '까르띠에 가문'은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이었다. 1847년 창업 이후 1964년 경영권 매각에 이를 때까지 4세대에 걸쳐 견고히 유지됐던 가족 경영의 역사는 외부인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호사가들의 집요한 추적에도 침묵을 지켰던 주얼리 제국의 내밀한 역사는 후일 가문의 후예에 의해 공개됐다.
까르띠에 가문의 6대손인 프란체스카 까르띠에 브리켈이 쓴 '더 까르띠에'는 세계적인 주얼리 하우스를 건설한 주역이었던 창업 1~4세대의 활약상과 고난, 내밀한 가족사를 아우른다. 그들이 주고받은 서신과 증언은 물론 전 세계를 발로 뛰며 까르띠에에서 일했던 근로자들을 찾아가 얻은 생생한 이야기까지 눌러 담으며 '주얼리 제국'을 입체적으로 펼쳐낸다.
저자에 따르면 까르띠에가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로 발돋움한 때는 창업주 3세 경영이 본격화되던 20세기 초였다. 창업자 루이 프랑수아와 2세 경영자 알프레드는 프랑스 2월 혁명과 보불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외제니 왕후에게 선택받으며 까르띠에를 파리 럭셔리계 중심에 올려놓았다. 3세였던 삼형제 루이 조제프, 피에르 카미유, 자크 테오뒬은 각각 파리, 뉴욕, 런던을 맡아 사업 영역을 넓혔다. 창의적이었던 루이는 주얼리 혁신의 선두 주자였다. 피에르는 영업과 홍보, 재무에 능했다. 자크는 보석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다. 각자의 재능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자 프랑스를 탐탁지 않아 하는 영국이 반응했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를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으로 추켜세우며 사상 처음으로 왕실의 공식 주얼리 공급자로 지정했을 정도다. 1936년 까르띠에가 제작한 헤일로 티아라(작은 왕관)는 4세대에 걸쳐 영국 왕실 여성들이 착용했다.
매각되기 전까지 까르띠에 가문에 닥친 위기는 숱했다. 유럽 전역을 휩쓴 1848년 혁명과 대공황, 1·2차 세계대전. 세계사에 굵직하게 남은 사건들이다. 삼형제는 유연한 사업 운영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도금 시대(Gilded Age) 당시 미국 신흥 부유층의 사치를 겨냥해 북미에 진출했다. 대공황기에는 서구 경제가 침체된 틈을 피해 러시아와 인도 등 동방을 공략했다. 그들에겐 전쟁도 럭셔리 제품을 위한 영감이 됐다. 세계 최초의 남성 손목시계를 고안한 장본인인 루이 조제프는 탱크의 모습을 본뜬 '탱크 시계'를 만들었다. 탱크 캐터필러에서 영감을 받아 다이얼 양쪽에 수직 사이드바를 올린 네모난 시계는 '클래식'이 됐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배우 조지 클루니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 등 수많은 유명인의 사랑을 받았다.
'더 까르띠에'가 까르띠에 가문의 역사를 다룬 책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밀도다. 책은 역사를 따라가면서도 가족 경영에서 빚어진 형제간 갈등과 우애, 정략결혼으로 인한 괴로움, 개인적인 욕망과 좌절을 내밀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책을 쓰게 된 계기를 할아버지이자 가문의 4대손인 장 자크 까르띠에의 자택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트렁크라고 말한다. 트렁크에서 지난 세대가 남긴 서신을 발견한 그는 할아버지를 설득해 녹음한 각종 문서와 꿰어내며 10년에 걸쳐 가문의 연대기를 완성했다. 보석이 빛나는 찰나의 순간을 위해 길고 신산한 세월을 걸었던 선대들의 모습을 활자에 붙들어두면서. 원제는 'The Cartiers: The Untold Story of the Family Behind the Jewelry Empire'.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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