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3 계엄 내란 사태 후 올해는 현직 대통령의 체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출범으로 문을 열었다. 봄에는 경북 의성 등 전국에 동시다발로 산불이 일어났고, 여름엔 기록적 폭염과 폭우가 이어지는 등 재난 수준의 기후변화 여파를 체감했다. 다사다난했지만 생명과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한 이들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누리호 4차 발사를 성공시킨 연구진의 포옹에 환호했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켜봤다. 코스피 4000선 돌파,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 뒤에는 SK그룹,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등 재계의 노력과 헌신도 있었다.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축구선수 손흥민,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작곡가 이재, K뷰티의 역사를 새로 쓴 에이피알 등 우리나라의 저력을 증명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통해 2025년을 돌아본다. <편집자주>
①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025년 4월 4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긴박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대행은 22분간 탄핵심판 결정문 요지를 낭독한 끝에 주문을 읽었다. 비상계엄 사태로 마주한 헌정 위기가 법치주의 틀 안에서 일단락된 순간이었다. 헌재는 이 결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독지가 김장하 선생의 지원으로 법관이 됐다. 공직에 머무는 내내 "사회에 갚으라"던 선생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았다. 퇴임 후에도 사법부 독립에 대한 소신이 명확했다. 최근 강연에서 "사법 독립은 입법·행정부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존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권력에서 독립하는 게 법치주의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정치권의 사법개혁 논의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재판소원 도입은 사실상 4심제를 만드는 것이라 현실에 맞지 않다"고 반대 입장을 밝히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들이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냈다.
② 손흥민 선수
亞축구 역사 다시 쓴 레전드
손흥민은 2010년 독일 프로축구 함부르크에서 프로로 데뷔한 이래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특히 2015년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부)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은 이래 10시즌 454경기에서 통산 173골 101도움을 기록해 자타 공인 스타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내년 여름 국가대표로서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월드컵에서의 맹활약도 다짐하고 있다.
올해는 '무관' 꼬리표를 뗀 뜻깊은 해다. 지난 5월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에서 토트넘의 우승을 이끌고 포효했다. 태극기를 허리에 두르고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린 손흥민의 모습은 명장면으로 남았다.
8월부터는 유럽을 떠나 미국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의 로스앤젤레스(LA) FC로 옮겼다. LA에 연고를 둔 프로 스포츠팀들이 일제히 환영 인사를 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첫 시즌부터 13경기에 출전해 12골 4도움을 기록하며 LA FC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③ 최태원 SK그룹 회장
APEC 성료·'사천피' 주역
올해 가장 많이 주목을 받은 대기업 총수를 한 사람 꼽는다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지난 10월 2025 경주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여기에 더해 그의 가장 큰 기여는 다름 아닌 주식시장에 있다. SK그룹이 2012년 인수한 SK하이닉스 주가가 올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코스피 불장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2400에서 한 해를 시작했던 코스피는 한때 4200까지 올랐다. 특히 SK하이닉스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200% 넘게 상승했고, 시가총액은 400조원을 돌파했다. SK하이닉스 주가 급등은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덕분이다. 엔비디아향 HBM의 약 70%를 공급하면서 올해 4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은 '세기의 이혼'으로 불리는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과의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하면서 개인사에서도 걱정을 덜어냈다.
④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AI 깐부'들의 치맥 회동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높은 4조달러의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지분가치는 약 1500억달러에 달한다. 그런 그가 지난 10월 서울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치킨+맥주)'을 함께했다. 기업인들의 소탈한 회동은 국민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줬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K팝 그룹 '소다 보이즈'에 빗대어 '부자 보이즈'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 회장이 치킨집 아들에게 준 '효자되세요'라는 사인과 "이렇게 보여도 막내"라는 정 회장의 멘트에 네티즌은 열광했다.
이날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두 회장과 함께 무대에 오른 황 CEO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과 편지로 얽힌 특별한 인연을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다음날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5만장씩 구입해 한국의 AI 전환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⑤ 이지호 해군 소위
자원입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씨가 지난 9월 해군 장교로 입대했다. 국내 최대 기업 회장의 아들이 장교로 입대하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란 평가가 나왔다. 2000년 미국에서 태어난 이씨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였다. 그러나 입대를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그의 입대뿐만 아니라 임관식도 큰 관심을 받았다. 경남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임관식에는 이 회장과 이씨의 할머니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고모인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모친 임세령 대상홀딩스 부회장이 모였다. 아버지에게 경례하는 '이지호 소위'와 이를 뿌듯하게 바라보는 이 회장의 모습은 '부모는 똑같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⑥ 故 이순재 배우
'시대의 얼굴'이었던 명배우
연극 '리어왕'의 노쇠한 폭군부터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코믹한 한의사까지. 연기자로서 스펙트럼을 넓히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경지를 보여준 '영원한 현역' 배우 이순재가 지난 11월 별세해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성장한 고인은 서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일 때 연극에 발을 내디뎠고 '연기 외길'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드라마 175편, 영화 150편, 연극 100편에 출연했다.
연기로 세상과 호흡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한국의 대배우이자 '시대의 얼굴'이었다. 브라운관과 연극 무대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했고, 예능 '꽃보다 할배' 등을 통해 나이와 무관한 삶의 투철한 자세를 보여줬다.
"시청자에게 평생 도움을 받았다. 여러분의 사랑에 감사한다"는 고인의 말은 유언으로 남았다. 향년 91세. 고인의 별세 이후 정부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⑦ 경북 119산불특수대응단
최악의 산불 잡은 영웅들
올해 3월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화재 발생 열흘 만에 완전 진화하기까지는 경북도 119산불특수대응단의 목숨을 건 사투가 있었다.
이들은 최전방 진화 부대로서 맹활약했다. 강풍과 급경사 산악 지형 탓에 헬기가 접근하기 어려운 구간에 직접 장비를 메고 올라가 물줄기와 진화 약제를 뿌리는 등 밤낮없이 화선과 맞서 싸웠다. 특히 인명 피해가 예상되던 마을 인근과 축사·창고 주변에도 방어선을 적극 구축해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집중 방어했다. 동시에 주민 대피 유도 등 인명 보호 임무도 병행하며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부 대원은 200시간 넘게 현장 작전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응단은 2023년 발족한 광역 산불 전담 조직으로, 현재 62명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산불 진화 차량과 험지 펌프차·산불 장비 세트 등 전문 장비를 갖추고 24시간 산불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⑧ 이재 작곡가 겸 가수
세계 음악시장 석권한 '골든'
명실상부 올해의 K팝으로 꼽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제가 '골든'을 만들고 불렀다. 작곡가 이재 얘기다. '영원히 깨질 수 없는' 등 한국어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전 세계인이 따라 부른 한 해였다. 이 노래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등 글로벌 주요 차트의 정상을 차지했다.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로 꼽히는 그래미 어워드에도 '올해의 노래'를 비롯해 총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이재(EJAE·본명 김은재)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으로 10여 년간 아이돌 트레이닝을 받고도 데뷔는 무산된 아픔을 딛고 작곡가로 성공을 거뒀다. 앞서 레드벨벳의 '사이코', 에스파 '드라마' '아마겟돈' 등을 작곡했다.
그는 '골든'을 작곡한 과정에 대해선 "힘든 시간을 겪고 있어서 희망적인 노래를 만들고 싶었던 개인적 감정도 담았다"고 전했다. "연습생 땐 내 콤플렉스를 가리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고, 작곡가로선 유명 작곡가 이름 뒤에 가려져 상처를 받기도 했거든요. 주인공에게 공감하며 저도 치유를 받았죠."
⑨ 누리호 4차 발사 연구진
우주에 펼치는 꿈과 희망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연구진은 지난 11월 누리호 4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독자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가 2·3차에 이어 4차까지 성공하면서 세계 시장에 K로켓의 기술적 신뢰도를 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발사는 민간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제작과 조립을 총괄했다.
누리호 연구진이 수년 간 노력한 끝에 한국은 세계적으로 뜨거운 우주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됐다.
지난 11월 27일 새벽 누리호 4차 발사가 이뤄지고 모든 비행을 마치자 연구진은 긴장감을 내려놓고 환호하며 성공을 자축했다. 서로 얼싸안은 기쁨도 잠시 이들은 내년 누리호 5차 발사를 위해 곧바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⑩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
K뷰티테크 위상 높인 창업가
1988년생 청년 창업가가 국내 대표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을 일궜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2014년 회사를 설립한 후 창립 10년 만에 국내 벤처기업 최초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달성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24년 2월 상장 후 1년4개월 뒤인 올해 6월 처음으로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을 넘어 화장품주 2위에 올랐다. 이어 지난 8월 종가 기준으로 아모레퍼시픽까지 제치며 K뷰티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에이피알은 뷰티와 기술을 접목한 혁신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메디큐브를 포함한 6개 브랜드를 운영하며 스킨케어 화장품과 홈 뷰티 디바이스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올해 1~3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9797억원으로 전년 동기(4785억원)의 2배에 달했다. 3분기 매출(3859억원) 중 해외 비중이 80%에 이를 만큼 글로벌 반응이 좋아 미국에 이어 유럽 공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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