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을 식당으로 개조한 밥집 내부는 황토벽으로 마감돼 있었는데 고향집처럼 푸근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안겨줬다. 일행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반듯하면서도 정갈한 입성의 박 씨가 따뜻한 둥글레차를 가져다줬다. 권 씨가 주방에서 밥과 찬을 만들고 박 씨는 주문을 받고 홀 서빙을 하는데, 유명세 때문에 늘 식객이 붐벼도 이 부부에게서 잔망스러운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손과 발을 천천히 그리고 정교하게 쓰며 수저와 컵을 세팅하고 음식 한 종지를 담는 데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손님으로선 음식이 나오기까지 침을 삼키며 기다려야 하지만 그것 역시 이 집이 만들어온 미풍에 참여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떡갈비 나물밥 정식(1인당 1만2000원)을 시켰다. 나물과 밥이 한데 담긴 사발이 앞에 놓였을 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산뽕잎, 취나물, 명아주, 장로, 개망초 등을 넣어 밥을 짓는단다. 다른 집 나물밥과 달리 다소 질척해 보였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질은 느낌은 없고 풍미와 식감의 조화가 깜짝 놀랄 정도로 기막혔다. 나물향이 밥 낱알마다 깊이 밴 느낌이랄까. 나물밥에 ‘짝지’처럼 함께 나온 청국장의 감칠맛은 휘둥그레진 눈빛을 서로 교환할 정도였고, 딸려 나온 장아찌와 나물무침 역시 하나같이 깊고 깔끔한 맛을 품고 있었다. 난생 처음 ‘김장아찌’라는 걸 먹어봤다. 지리산 흑돼지고기를 썼다는 귀띔 없이도 수제 떡갈비는 입에서 녹는 저작감과 육즙이 일품이었다. 우울증 약에 입맛을 잃어 요즘 통 밥을 못 먹는다는 동행인이 한 그릇을 말끔하게 뚝딱 비웠으니 할 말 다한 셈이다.
이 집에서 나물밥을 먹고 나니 절로 섭생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대지를 뚫고 나온 작은 나물의 생명력을 상상해본다. 이 상상력은 땅 위에 도로를 내고 집과 빌딩을 지어 평생을 살아내는 사람들과 이 소소한 나물 사이에 모종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데까지 이어진다. ‘온생명 사상’이란 게 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일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상인데, 쉽게 말하면 저 시냇가의 가재 한 마리가 병들면 그 여파가 물과 흙과 공기 등을 매개로 내 생명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입에 넣어 먹고 그것이 피와 살과 뼈를 이루는 게 근간인 섭생은 바로 그런 생명의 연대 행위라는 각성이 여기 시골 나물밥집 밥상 위에 있었다.산해진미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봄에는 나물밥을 먹어야 한다. 겨울을 나고 봄에 이른 사람의 몸이 흙을 스윽 밀면서 나온 나물을 먹는다는 것은, 그러므로 기꺼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이고 그 자신이 봄이 된다는 뜻이리라.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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