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대로라면 다음달 2일에는 상호관세, 15일 전후에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 보고서가 발표된다. 미국의 8대 무역적자국이자 비관세 장벽이 높아 ‘더티 15국’에 들어간 한국은 얼마나 높은 상호관세율이 적용될지, 과연 환율조작국에 지정될지 동시에 우려되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강한 미국과 강한 달러’ 기조를 표방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당이 집권할 때마다 달러 위주의 브레턴우즈 체제는 비교적 잘 유지됐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구상하는 것도 조 바이든 정부 들어 국제통화체제가 ‘시스템이 없다(no system)’는 평가가 나올 만큼 미국과 달러 위상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또 다른 전통인 친기업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이 잘되도록 밀어줘야 한다. 기업가 출신이 많은 집권 2기에는 강달러를 아예 포기하고 약달러를 추진해야 한다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달러 정책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달러와 약달러 필요성을 동시에 느낄 때 미국이 추진한 환율 정책은 틴베르헌 정리(Tinbergen’s theorem)에 따른 ‘이원적 전략’이다. 틴베르헌 정리는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 당시 한 수단으로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을 잡기 어려워지자 목적별로 수단을 달리 가져가자는 정책조합을 말한다. 환율 정책 면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적용해왔다.
이원적 환율 정책 관점에서 공화당의 전통인 강달러 기조를 유지하면서 현안인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경로를 추진해 보면 교역국 입장에서는 상호관세보다 환율 보고서가 더 어렵게 나올 확률이 높다. 달러 가치는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에서 비중이 낮은 유럽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 비중이 높은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는 약세가 돼야 한다. 구성 비중이 높은 유로화가 약세를 띠면 달러인덱스가 올라 공화당의 전통인 강달러 기조 유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달러 가치는 최적경로와 반대로 흐르고 있다. PIGS(포루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와 독일의 부흥으로 유로화에 대해서는 약세,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띠고 있다. 유로화 강세로 달러인덱스는 취임 전 110대에서 104대로 떨어져 이대로 가다간 공화당의 전통이 무너지고 무역적자까지 확대돼 관세 정책마저 무력화할 확률이 높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진영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이원적 환율 정책에서 한국 원화는 가장 많이 이탈돼 있다.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원·달러 환율의 적정 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1250원 내외로 나온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 내외에서 움직이는 점을 고려하면 220원 정도 높아 미국의 10대 무역적자국 통화 중에서 가장 평가절하된 수준이다.
미국으로부터 오해를 받을 소지도 있다. 이달 중순 이후 외국인 자금이 국채 시장을 포함해 4조원 이상 들어왔다. 시장에 맡겨놓으면 외국인 자금이 1조원 유입될 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10원 정도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1470원대로 올라 인위적으로 원화 약세를 조작한다는 시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당국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무역 촉진법 2015’에 따라 까다로운 BHC(배넷-해치-카퍼) 조건을 들어 환율조작국 지정이 어렵다는 낙관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 2기 첫 환율 보고서인 이번에는 집권 1기 때부터 검토해온 ‘종합무역법 1988’이 적용될 확률이 높다. 이 법에 따라 환율조작국에 지정된 1990년대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되돌아보면서 미리 대비해 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