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데뷔한 루키 선수들에게 으레 따라붙는 우려가 있다. ‘소포모어(2년 차) 징크스’. 깜짝 스타로 등장해 주변의 기대가 한껏 치솟은 상태에서 더 잘하고 싶은 부담감에 발목 잡히는 이들이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유민(21)은 달랐다. 지난해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호쾌한 플레이로 한국 여자골프의 스타로 화려하게 떠오른 그는 정규투어 2년 차인 올해 더 높이 날아올랐다. 시즌 총상금 10억원 돌파, 대상 포인트 7위, 여기에 팬들이 투표로 뽑은 인기상에서 박현경, 윤이나를 제치고 주인공이 됐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황유민은 “올해는 경기하면서도 지난해보다 기량이 나아졌다고 스스로 느꼈다. 목표였던 다승을 이루진 못했지만 80점을 주고 싶을 만큼 행복한 시즌이었다”며 활짝 웃었다.
○ 돌격대장 vs 앳된 소녀
황유민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2년 차 만에 인기 순위 1위로 끌어올린 가장 큰 비결은 ‘반전의 힘’이다. 163㎝에 가녀린 체구, 앳된 얼굴의 선수지만 필드에서는 그 누구보다 과감하다. 탄탄한 하체와 힘찬 스윙으로 뿜어내는 평균 253.7야드의 장타, 여기에 어디서든 곧바로 핀을 노리는 공격적인 플레이가 골프 팬들을 매료시켰다. 지난 7월 Sh수협은행 MBN여자오픈 최종라운드 11번홀(파4)에서 드라이버로 한 번에 그린에 공을 올린 플레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그 전홀에서 두 번의 OB로 트리플보기를 기록해 반전이 필요했다”며 “성공 확률이 낮아도 해보자는 생각에 도전했고, 결과가 맞아떨어져 짜릿했던 순간”이라고 했다. 이런 플레이가 이어지면서 그의 이름 앞에는 늘 ‘돌격대장’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하지만 필드 밖에서는 순식간에 앳되고 예의 바른 소녀로 돌아온다. 지난달 KLPGA투어 시상식에서 인기상 소감을 밝히던 중 몇 번이나 떨리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팬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그는 “수상 소감을 완벽하게 외우려다가 너무 긴장한 바람에 실수했다”며 “그 모습마저 좋게 봐주시는 팬들을 보며 더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황유민은 올 시즌 국내 개막전인 두산위브 챔피언십에서 일찌감치 우승했다. 이후 추가 우승은 올리지 못했지만 준우승만 네 번 기록하며 꾸준히 우승 경쟁에 나섰다. 준우승에 그는 “올해 드라이버샷 미스가 줄어들면서 내 장점인 공격적인 플레이에도 힘이 붙었다”며 “작은 체구로 멀리 치는 것도 신기하고, 보기에 재밌는 골프를 치는 것도 좋아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 “1년간 내공 다지고 미국 도전”
황유민은 지난 10월 네 개 대회를 남겨두고 일찌감치 총상금 10억원을 넘기며 올 시즌 네 번째 ‘10억클럽’ 멤버가 됐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다승과 10억원을 약속했는데 그중 하나를 지켰다”며 “우승은 한 번이었지만 상금 10억원을 넘어선 건 좀 잘한 것 같다는 뿌듯함이 들었다”고 웃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 출전은 쓰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아문디에비앙 챔피언십에서는 커트 탈락, 지난달 롯데챔피언십에서는 공동 35위에 그쳤지만 “꼭 필요한 자극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하필 샷감이 썩 좋지 않을 때여서 아쉬움이 컸지만 잘 치는 사람이 정말 많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럼에도 이 선수들과 경쟁하고 싶고, 그를 통해 내 골프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
당초 내년으로 잡았던 LPGA투어 도전을 1년 더 미룬 것도 그래서다. 황유민은 “막연하게 ‘미국에 최대한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더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허리 통증 등 불안 요소를 말끔히 떨쳐내고 기술을 더 다듬어서 LPGA투어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목표는 “한 번 더 성장하는 선수”다. “올해 못 이룬 다승을 꼭 하고 싶어요. 그리고 매번 플레이에서 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황유민다운, 재미있는 골프를 보여드릴게요.”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