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을 병이라 부르기 전의 풍경…PKM 갤러리 이근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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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을 병이라 부르기 전의 풍경…PKM 갤러리 이근민 개인전

입력 : 2026.06.29 14:32

붉은 내장과 혈흔으로 재구성
사회의 정상성 기준에 질문

이근민의 ‘Deposition of Unreality upon Real, the Boundary’(2023) <PKM 갤러리>

이근민의 ‘Deposition of Unreality upon Real, the Boundary’(2023) <PKM 갤러리>

한국 사회에서 정신의학과에 간다는 것은 여전히 숨기고 싶고 숨겨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마음의 병을 꽁꽁 싸매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정신과 진단 이력을 당당히 공개하고 자기가 봤던 환각을 담담하게 재구성하는 작가가 있다. 25년 전 마주한 환각의 기억을 예술적 에너지로 승화해 온 이근민(44) 작가다.

이근민의 ‘Connected Body’(2026) <PKM 갤러리>

이근민의 ‘Connected Body’(2026) <PKM 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 갤러리는 이근민의 개인전 ‘장면이 되기 전’을 연다. 작가의 PKM 갤러리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2023년 이후 제작한 대형 신작 회화와 드로잉 연작 등 미발표 작업 23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회화에 등장하는 붉은 피와 내장, 근육, 혈흔의 형상은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이 이미지는 작가가 대학생이던 2001년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약 두 달간 입원 생활을 하며 경험했던 환각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서울대 미대에 합격해 학업에 매진하던 성실한 학생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궤도 위를 밟아가던 모범생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신과 진단은 큰 충격이자 의문으로 다가왔다.

이근민의 ‘Organic Plate’(2026) <PKM 갤러리>

이근민의 ‘Organic Plate’(2026) <PKM 갤러리>

작가는 당시 의학 시스템이 한 개인을 진단명과 진단코드로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분류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문명사회가 효율성을 위해 정립한 질병 분류 체계가, 실제로는 인간을 재단하고 배제하는 일종의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에 작가는 비정상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환각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근민의 ‘Connected Body’(2026) <PKM 갤러리>

이근민의 ‘Connected Body’(2026) <PKM 갤러리>

이번 전시의 제목 ‘장면이 되기 전’은 환각이 병의 증상이라는 사회적 이름표를 달기 전, 그 자체로 존재했던 이미지와 감각을 되돌아보려는 작가의 시선을 담고 있다. 작가는 의학적 진단이나 타인의 해석이 개입하기 전,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오롯이 존재했던 이미지를 화면에 재구성했다. 그가 쏟아낸 붉은빛은 자신과 타자,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든 존재의 생명성을 드러내는 은유다. 파편화된 신체 이미지는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구속 없는 해방감을 표현하며 생명력의 에너지를 분출한다.

이근민의 ‘Encounter in the Mountains’(2023) <PKM 갤러리>

이근민의 ‘Encounter in the Mountains’(2023) <PKM 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작품을 단순한 개인의 치유 이야기나 감정의 분출로만 보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고통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 질병과 건강을 나누는 이분법적 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는 7월 25일까지.

이근민의 ‘Refining Hallucinations’(2026) <PKM 갤러리>

이근민의 ‘Refining Hallucinations’(2026) <PKM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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