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가려고 그린란드 산다?…머스크-트럼프의 ‘꿈’[트럼피디아]

3 weeks ago 10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겸 미 정부효율부(DOGE) 수장에게는 이른바 ‘애착 티셔츠’가 있다. 정치 데뷔 무대였던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공동 유세에 입고 나온 옷이다. 가격은 30달러, 스페이스X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티셔츠에 적힌 문구는 바로 ‘OCCUPY MARS(화성을 점령하자)’.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에서 ‘화성을 점령하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머스크. 버틀러=AP 뉴시스

지난해 10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유세에서 ‘화성을 점령하자’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머스크. 버틀러=AP 뉴시스

화성 식민지 건설은 머스크가 오래전부터 품어온 꿈이다. 10세 소년 머스크는 미국 공상과학(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가 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읽고 화성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파운데이션은 인류 문명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는 내용의 대하소설이다. 그리고 44년이 흐른 현재 머스크는 어느 때보다 자신의 꿈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올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머스크가 걸어온 ‘화성 외길 인생’을 살펴봤다.

● 안 되면 되게 한다

머스크는 2000년 29세의 나이에 온라인결제 업체 페이팔을 공동설립해 큰 부자가 됐다. 그 후 화성을 향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2021년 7월 머스크는 로켓 엔지니어 짐 캔트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 머스크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이였다. 캔트렐에 따르면 머스크는 전화를 걸자마자 이렇게 말을 쏟아냈다.

“저는 일론 머스크입니다. 인터넷 억만장자인데 페이팔을 창업했어요. 남은 인생을 바닷가에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살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일입니다.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고, 지금 전 러시아 로켓을 사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전화했습니다.”

2006년 화성학회 학술행사에서 발표하는 머스크. 사진 출처 플리커 ‘FlyingSinger(Bruce Irving)’

2006년 화성학회 학술행사에서 발표하는 머스크. 사진 출처 플리커 ‘FlyingSinger(Bruce Irving)’

캔트렐은 캘리포니아주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이지만 러시아와 인연이 깊었다. 유타주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25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소련과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의 합작 화성 프로그램에 합류한 것.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캔트렐은 러시아 로켓 매입을 주선해줬고, 머스크의 우주 공학 과외 선생이 됐다. (머스크의 학사 전공은 물리학과 경제학이고, 스탠퍼드대 응용물리학 박사과정은 첫 학기에 중퇴했다. 이공계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고 프로그래밍도 독학했다.) 둘은 2001년, 2002년 러시아로 네 차례 이상 출장을 다녀왔지만, 거래는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머스크는 좌절하지 않았다. 로켓을 살 수 없다면 직접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 그는 출장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캔트렐에게 직접 그린 로켓 설계도를 보여줬다. 머스크의 천재성에 놀란 캔트렐은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2002년 3월 스페이스X가 임직원 4명짜리 스타트업으로 출범했다.

기술 전문지 허슬과 인터뷰에서 캔트렐은 “머스크가 하도 소리를 질러대며 들들 볶는 탓에 나는 견디지 못하고 2003년 스페이스X를 떠났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화성에 대한 집념만은 머스크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말했다.

● 목표는 하나, 화성 식민지 건설

머스크는 2008년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 로켓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지원을 받아 세계 최초의 재사용 가능 로켓 팰컨9도 개발했다. 2020년에는 팰컨9에 우주선 ‘크루드래곤’을 탑재해 민간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현재는 화성 왕복 비행을 목표로 탑승 인원 80~120명 규모의 초대형 우주선 ‘스타쉽’을 개발하고 있다. 다만 화성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는 우주 여객선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많다. 화성에 인간이 정주할 시설을 짓고,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물자를 확보할 방법을 찾는 것은 물론 인류의 첫 우주 정착지에서 어떻게 법과 제도를 운용할지도 정립해야 한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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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트렐은 “머스크가 하는 모든 사업은 화성 식민지 건설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지난해 스페이스X 관련자 20명 이상을 인터뷰해 “머스크가 소유한 기업의 진짜 쓰임은 화성 식민지 건설”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예컨대 평균 표면온도가 영하 80도인 화성에서 인간이 정주하기 위해서는 지하 시설을 건설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우세한데, 머스크가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터널 건설업체 보링컴퍼니를 2017년 설립했다는 것이다.

트위터(현 X) 인수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는 2022년 트위터 인수를 앞두고 주변인에게 “트위터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를 실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표자 없이 구성원이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머스크가 공개한 화성 구상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를 실현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X에 투표 기능이 추가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테슬라도 마찬가지다. 머스크는 2019년 트위터에 “테슬라 사이버트럭은 화성의 공식 픽업트럭이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머스크는 2023년 마침내 사이버트럭을 공식 출시하며 “미래는 이렇게 생겼다”고 말했다.

2023년 공식 출시된 사이버트럭. 테슬라 제공

2023년 공식 출시된 사이버트럭. 테슬라 제공

● 트럼프 대통령 “화성으로 가자”

트위터 인수 후 머스크의 행보를 두고 “정치에 너무 많이 시간을 쓴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그가 사업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인데, 머스크가 이번 대선에서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투입해 적극 지원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하자 우려는 기대로 180도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감동시킨 머스크의 선거운동은 트럼피디아 7화에서 다뤘다.

대선 2주 뒤인 지난해 11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스타쉽의 6차 시험비행을 ‘직관(직접 관람)’했다. 텍사스주의 스페이스X 우주발사시설 ‘스타베이스’에 방문한 것. 머스크는 일일 견학 가이드로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과 장남 트럼프 주니어, 손녀 카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은 이날 발사 1시간 전쯤 도착해 스타쉽 내부를 구경했다.

이날의 경험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에 대해 “중국도, 러시아도 만들지 못하는 로켓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며 “모든 대가를 치러 지켜야 할 천재”라고 칭송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스타쉽 시험비행을 지켜보는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 보카치카=AP 뉴시스

지난해 11월 스타쉽 시험비행을 지켜보는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 보카치카=AP 뉴시스

그리고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화성으로 가자”고 선언했다. 사실상 머스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화성에 성조기를 꽂을 ‘아메리칸’ 우주비행사를 (태운 우주선을) 쏘아 올리겠다”고 말했다.

머스크에게 준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지명해 정부 구조조정을 맡겼다. 과거 머스크는 당국의 규제를 화성 정복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았다. 그는 “우주선 만드는 것보다 발사 허가를 받는 게 더 오래 걸린다”며 “이러다간 화성에 가지 못한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 연방항공청(FAA)에 대한 강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 화성은 트럼프-머스크 공동 소망

화성 탐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는 집권 1기 첫해인 2017년 미국의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을 중단 45년 만에 재가동했다. 그는 달을 넘어 화성까지 가고싶어 했다. 그해 7월 열린 달착륙 50주년 백악관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사 국장에게 “다들 화성에 가려면 달부터 가야 한다는데, 달을 건너뛰고 곧장 갈 방법이 아예 없냐”고 질문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조바심을 채워줄 인물이 바로 머스크다. 머스크는 지난달 2일 X에 “우리는 바로 화성으로 간다. 달은 방해만 된다”고 적었다. 머스크가 제시한 화성 탐사 시간표는 ‘2026년 무인 비행선 발사, 2028년 유인 비행선을 발사’다. NYT 등 미 언론은 각자의 궤도에 따라 움직이는 지구와 화성의 위치를 고려할 때 이론적으로 가능한 일정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묘한 취임사도 머스크의 계획과 맞아떨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임기 내에 미국인 우주비행사를 화성에 ‘보내겠다’고 하지 않고 ‘쏘아 올리겠다(launch)’고 말했는데, 이는 지구에서 화성까지 가는 데 수개월이 걸리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28년에 지구를 출발하더라도 화성에 연내 도착하지 못할 수 있다.

● ‘화성 직행’ 가능할까

그렇다면 그간 ‘화성 직행’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달을 건너뛰고 화성에 가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8년 전 나사 국장은 이렇게 답했다.

“달을 테스트 장소로 활용해야 합니다. 화성에 가면 오랜 기간 머물러야 하므로, 인간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생활하고 작업하는 방법을 미리 익혀둬야 합니다.”

즉, 달을 건너뛰려면 달을 대체할 장소가 필요하다.

이에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달의 대체제로 보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사 역시 그린란드에서 화성 탐사 연구를 진행한 바 있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분석은 아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보수 테크 진영에서 그린란드를 화성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7일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개인 전용기를 타고 그린란드에 방문했다. 누크=AP 뉴시스

지난달 7일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개인 전용기를 타고 그린란드에 방문했다. 누크=AP 뉴시스

머스크의 최측근이 “화성 정착을 위해 그린란드 매입을 시도했다”는 스타트업에 거액을 투자를 한 사례도 있다. 화성에 미래도시를 만들겠다며 2019년 출범한 스타트업 프랙시스는 피터 틸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조 론스데일 팔란티어 공동창업자 등의 주도로 출범 직후 9억 달러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의 최측근을 관련 요직에 연이어 지명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덴마크 대사 지명을 발표하며 그린란드 매입 계획을 공개했다. 덴마크 대사로 지명된 인물은 머스크와 페이팔을 공동창업한 캔 하워리(50). 나사 수장으로는 머스크의 스페이스X 우주선을 타고 우주 비행을 한 사업가 재러드 아이잭먼(42)이 지명됐다.

*머스크와 페이팔을 창업한 절친들의 25년 우정은 트럼피디아 8화에서 다뤘다.

빙하로 뒤덮인 그린란드 풍경. AP 뉴시스

빙하로 뒤덮인 그린란드 풍경. AP 뉴시스

취임사에서 그린란드 대신 화성이 언급된 점도 눈길이 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과 멕시코의 공동 해역인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바꾸고, 중남미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리고는 대뜸 화성에 우주비행사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시사지 애틀랜틱에 따르면 예상 밖의 취임사를 두고 그린란드 현지에서 이런 농담이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린란드에 새로운 코드명이 생겼다. ‘화성’.”

9화 요약: 머스크의 일생일대의 목표는 화성 식민지 건설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임기 내에 화성으로 우주비행사를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머스크가 “달을 건너뛰고 곧장 화성으로 가겠다”고 밝히자,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머스크의 구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화성 정착 연구’ 용도로 그린란드를 매입하려 드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10화 예고: 머스크의 활약에 ‘공식 2인자’ J D 밴스 부통령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밴스를 2028년 대선 공화당 후보로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대표적인 ‘마가 후계자’로 꼽히는 밴스의 셈법은 무엇일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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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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