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2022년 출간한 <우리는 왜 서로를 미워하는가>라는 책에서 ‘극단적인 편 가르기’가 지배하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 양극화 현상’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좋아하기보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을 혐오하고 공격하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양대 정당체제의 구조적 한계가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미국 정치계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풍요(Abundance)>는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이 함께 쓴 책이다. 진보주의 성향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두 저자는 책을 통해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풍요’의 메시지를 유권자에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지난 수십 년간 반복돼 온 정책적 실수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문제의 원인을 짚어보고, 패배주의에 빠진 미국의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풍요의 정치’를 복원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오늘날 미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책은 이전 세대가 고민해서 찾은 해결책이 역설적으로 다음 세대의 문제로 변모해버렸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1970년대 도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각종 규제가 2020년대 접어들면서는 도리어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오늘날 주요 도시에서 임대료가 치솟고 주택 가격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인데, 지나친 정부 규제와 집단 이기주의가 원활한 주택 공급을 가로막았다. 가장 적절한 때와 장소에 필요한 주택이 건설되지 못하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화석 연료 사용을 막기 위한 각종 규제가 도리어 청정에너지 시설 확충을 방해했고, 태양광 패널과 송전망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각종 노력은 지역 사회와 이해관계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
저자들은 풍요와 번영을 위한 아이디어와 과학 기술은 이미 충분하지만, 각종 규제와 이해당사자들의 충돌로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과거의 영광에만 심취해 있고, 진보주의자들은 현재의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양 진영 모두를 에둘러 비판하면서 세상을 진보와 풍요로 이끌기 위해 정치권 전반의 각성을 요구한다. 특히 좌파 자유주의자들이 불평등과 차별 문제에만 집중하고 중산층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 증가에는 집중하지 않은 점을 꼬집는다. 풍요와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각종 규제와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철폐하고, 엘리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생산하고 혁신 아이디어가 ‘더 잘’ 실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책이 말하는 ‘풍요의 정치’는 다름 아니라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