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환경정책·기업경영…
아이들에 주는 영향 고려를
성인들 근로기준법 있듯이
학생들 ‘공부기준법’ 도입을
“ESG를 넘어 이제는 CSG를 논의해야 합니다. Children Sustainability Governance, 즉 어린이를 기준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근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홍대순 색동회 이사장은 “어린이는 미래세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존재”라고 강조했다. 교육, 환경, 기업 경영, 국가 정책까지 결국 “지금 우리 손을 잡고 있는 어린이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이사장은 ‘한국의 피터드러커’로 불리는 경영전략가다. 세계적 경영컨설팅 회사 아서디리틀 코리아 대표, 이화여대 교수, 광운대 경영대학원장을 지냈다. 기업 전략과 조직 혁신을 말해온 그가 지난 2월 어린이 문화운동단체인 색동회 이사장으로 선출된 뒤 꺼낸 화두가 바로 CSG다.
그는 “ESG가 숫자와 규율로 설명되는 좌뇌적 개념이라면 CSG는 훨씬 더 손에 잡히는 우뇌적 개념”이라고 말했다. 내 아이와 손주가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갈 환경을 떠올리면 기업과 사회의 판단 기준도 더 구체화된다는 설명이다. 규정과 매뉴얼이 모든 것을 정하지 않아도 “이것이 어린이에게 괜찮은가”라는 질문 하나가 제품과 서비스, 국가 정책의 개선을 이끌 수 있다는 얘기다.
홍 이사장이 이끄는 색동회는 1923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든 우리나라 대표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다. 어린이날 제정에 앞장섰고 방정환 선생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색동회 관련 기록물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으며 10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화구연, 동요, 동극, 동시 등 어린이 문화운동을 이어왔다.
홍 이사장은 “어린이의 육체적 건강만큼 마음 건강이 중요해진 시대”라며 “문화예술 활동은 어린이의 정서와 상상력, 공감 능력을 키우는 정서 백신과 같다”고 말했다. 동화구연은 어린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고, 동요는 세대 간 공감의 매개가 될 수 있다. 동극과 뮤지컬은 어린이의 오감을 자극하고 표현력을 길러준다.
홍 이사장은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단순한 지식이나 암기보다 지혜, 창의, 상상력, 공감 능력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환경은 여전히 문화예술 활동을 ‘공부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런 시선이 오히려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봤다.
홍 이사장은 어린이를 둘러싼 사회 환경이 지나치게 경쟁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공부, 입시, 성과의 잣대가 너무 이른 나이부터 어린이의 삶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 잘하는 어린이는 많을 수 있지만 행복한 어린이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체육, 예술, 협업, 공동체 경험을 통해 정서적 지지를 받아야 할 시기에 어린이들이 경쟁 구조 속으로 너무 빨리 밀려 들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홍 이사장은 어린이의 학습 환경과 관련해 ‘공부기준법’이라는 표현도 꺼냈다. 어른에게 근로기준법이 있듯 어린이에게도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지 않는 공부시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다. 그는 “어른에게는 노동시간 기준이 있는데 어린이는 밤늦게까지 공부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어린이가 주당 몇 시간까지 공부할 때 건강을 해치지 않는지, 이제는 세계적 기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색동회는 ‘동심 1M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심리적 거리 1m(미터)를 두자는 취지다. 홍 이사장은 “어린이를 자기 소유처럼 여기거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며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되 어린이를 내려다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는 거리다.
그는 이 캠페인을 하나의 사회적 의식으로 확장하고 싶다고 했다. 예컨대 매년 5월 5일 오후 5시에 1분 동안 어린이를 떠올리고 우리가 어린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방식이다. 지구의 날 소등 행사나 현충일 묵념처럼 어린이날에도 어린이 존중의 의미를 되새기는 상징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홍 이사장은 국가 차원의 어린이 전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교육, 학교폭력, 마약, 디지털 중독 등 어린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위협하는 요소를 부처별로 흩어 대응할 것이 아니라 어린이를 기준으로 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어린이위원회 같은 구상을 통해 어린이 안전, 건강, 정서, 놀이환경 등을 살피는 지표를 만들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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