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심리 기제
명쾌한 결론 원하는 ‘종결 욕구’…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고 촉진
다양성 무시하고 조직에 충성
의견 다른 집단과는 대립-갈등… 좌우 막론 극단 정치 성향으로
실체 없는 음모론에 잘 넘어가고, 극단적 지도자 따르는 부작용도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극단적 정치 성향 지지층이 늘어나는 현상은 정치적 양극화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 문화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가운데 개인 심리 차원에서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경향도 영향을 미친다. 혼란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해 안정감을 얻고 싶어 하는 심리가 정치 영역에서 발휘될 때 극단적이고 단순한 사고로 빠지기 쉬워서다. 극단에 쏠리게 되면 음모론에 빠지기 쉽거나, 선동적인 정치인이 인기를 끄는 등 부작용도 함께 나타난다.
● “확실한 정답 원해” 극단 정치 성향으로
심리학에서는 불확실성을 피해 확실한 결정을 빠르게 얻고자 하는 심리적 특성을 종결 욕구(need for closure)라고 한다. 여러 선택지 앞에서 힘들게 고민하다 결정을 내린 뒤에 후련함을 느꼈다면 종결 욕구가 해소된 것이다. 종결 욕구 수준은 자라온 환경과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종결 욕구가 큰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결정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지는 반면, 종결 욕구가 그다지 크지 않은 사람은 결말을 열어 두고 천천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종결 욕구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아리에 크루글란스키 미국 메릴랜드대 칼리지파크 심리학과 석좌교수에 따르면,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누구나 일시적으로 종결 욕구가 커진다. 정치, 경제, 사회, 외교적으로 혼란스러운 요즘 한국 사회가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종결 욕구가 커지면 열린 사고보다는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고를 하기 쉽다.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기보다 직관적이고 빠른 결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아져서다.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기보다는 획일적인 집단 사고를 추구하게 된다. 여러 정보를 검토하려면 인지적 과부하로 스트레스가 생기고, 이는 또 다른 혼란을 추가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빠른 결정, 확고한 결말, 심리적 안정을 위해 조직 내에서는 ‘우리끼린 잘 맞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진다. 내가 속한 조직에 순응할수록 충성심은 올라간다. 다른 집단은 배척하고, 조직 내에서도 의견을 달리하는 소수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특성이 합쳐지면 정치적 강성 지지층이 똘똘 뭉치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와 남의 경계가 더욱 뚜렷해지면서 협력보단 대립, 갈등, 혐오가 조장되기 쉽다. 결과적으로 보수는 더 보수 성향으로, 진보는 더 진보 성향으로 극단화된다. 정치적 강성 지지층은 종결 욕구가 누구보다 높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강성 지지층이 음모론에 더 잘 빠진다
강성 지지층이 많이 시청하는 유튜브 채널 등에서 음모론이나 유언비어가 판치는 것도 높은 종결 욕구 수준과 관련 있다. 음모론은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사안에 이른바 ‘명쾌한’ 답을 제공해 극단적인 결론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연구진은 성인 245명을 대상으로 개인의 종결 욕구 수준에 따라 음모론을 얼마나 믿는지 살펴봤다. 연구 당시 폴란드는 시리아 난민 수용 문제로 유럽연합(EU)과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폴란드 국민 78%가 난민을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는 ‘EU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폴란드에 난민을 입국시켜 폴란드 사회를 어지럽힌 후 정치적 장악력을 넓히려는 속셈이 있다’는 취지의 음모론적 시각을 강조하는 기사를 보여 줬다. 두 번째 그룹에는 난민 수용과 관련해 지금까지의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정리한 기사를 보여 줬다.
그런 다음 이들에게 난민 문제와 관련해 ‘EU의 진짜 목적이 따로 있다’ ‘EU가 폴란드 문화를 파괴하려고 한다’ ‘EU가 폴란드 경제를 파탄 내려 한다’ 같은 음모론적 주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었다.음모론적 시각이 담긴 기사를 읽은 첫 번째 그룹에서 종결 욕구가 큰 사람일수록 음모론에 강력하게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객관적 기사를 읽은 두 번째 그룹에서도 종결 욕구가 큰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음모론에 더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 그룹 모두 종결 욕구가 작은 사람은 음모론을 덜 믿었다. 연구진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모호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명확하게 해석하기 위해 근거 없는 음모론마저도 단서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극단적 지도자에게 쏠리는 눈
이때 극단적 성향 정치 지도자에게 끌리는 현상도 나타난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적 의사 결정 스타일을 나타내는 리더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배제하고 지지층이 원하는 화끈한 결정을 내리는 독단적인 리더에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다.
이 현상은 좌우 정치 성향과 무관하다.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차대 연구진은 2022년 상반기 성인 1754명을 대상으로 국가 안팎의 불확실성이 강성 지도자를 선호하는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당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직전이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막 침공한 때였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이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얼마나 혼란을 느끼는지와 함께 이들의 종결 욕구 수준, 강력한 사회 규범을 원하는 정도, 강성 지도자를 지지하는 수준을 조사했다.
그 결과 코로나19와 전쟁으로 큰 불안을 느끼는 사람일수록 종결 욕구 수준이 높았고 이는 강력한 사회 규범과 강한 리더에 대한 선호로 이어졌다. 강력한 사회 규범과 강한 리더를 원하는 정도는 우파 성향 참가자들에서 더 두드러졌지만, 좌파 성향 참가자들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유사한 경향성이 발견됐다. 위기에 처하면 사람들은 각자 성향에 맞는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를 원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강성 정치 지도자가 유권자에게 일부러 실제보다 과장된 불안감을 심어 주고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반(反)이민 정책을 고수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사례로 들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에 거주하는 불법 이민자 비율을 실제보다 12∼13%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연구진은 “불법 이민자 수를 과대평가한 사람들은 이민자를 위협으로 인식해 강력한 정책을 펼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치 지도자들이 위협적이고 과장된 언사로 대중을 불안하게 만드는 선동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쓸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혐오 조장’ 정치인이 위험한 이유
혐오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평온한 상태에서는 여러 정보와 의견을 수렴할 준비가 돼 있어 대화와 타협을 할 수 있지만, 적대감이 일어난 상태에서는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사고가 더 촉진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커진 종결 욕구로 인한 영향과 혐오 발언 효과가 합쳐지면 정서적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미국인 6535명을 대상으로 관련 실험을 진행한 김진우 국민대 미디어·광고학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감정 상태에 따라 사람들이 정책 관련 정보를 받아들이는 양상이 달라졌다. 감정적으로 평온한 상태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의료정책에 대해 평소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어긋나는 정보를 접하더라도, 사실관계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수용해 온건한 방향으로 의견을 바꾸려는 경향이 관찰됐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무책임하고 비열하다’ ‘민주당원은 멍청하다’ 같은 적대감을 일으키는 메시지와 함께 의료정책 정보를 접했을 땐, 평소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내용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느낀 순간 타협의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김 교수는 “적대적이고 논쟁적인 맥락에서 전달된 정보에 더욱 편견을 갖게 돼 있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건설적인 정치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적대감을 일으킬 때 지지층 간 갈등은 더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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