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400조 투자 허락 받아라?…삼성 노조 '경영 개입' 청구서 논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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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사진=연합뉴스

"기업 이익의 배분 기준 제도화는 기업의 고유한 경영판단에 속하는 사항으로 단체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5월 삼성전자 노사가 영업이익 중 일부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데 합의하자 "노조법상 의무적 단체교섭 대상은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근로자의 지위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한정된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경총의 경고는 사실 '노조발 성과급 배분 요구'를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 노조가 회사의 호남 반도체 투자 발표와 관련해 '노사정 협의'를 제안하면서 경영 판단에 개입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들 사안은 서로 다른 성격으로 보이지만 핵심은 같다. 노조가 근로자 권익 보호를 명목으로 기업의 투자·자원 배분·사업 재편과 같은 경영판단에 어느 수준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 적정선을 둘러싼 논쟁이어서다.

삼성 '반도체 투자' 발표에 "노사정 협의체 구성"

2일 노동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는 전날 서남권 반도체 투자 방안 등을 담은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노조가 참여하는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초기업노조는 "조합원이 앞으로 일하게 될 현장의 산업 안전, 주거 환경, 인프라가 충실히 갖춰지고 그에 걸맞은 처우가 뒷받침되길 바란다"며 협의체 구상을 띄운 것이다.

당장은 조합원들이 투입될 현장 여건을 점검하자는 요구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초기업노조는 "좋은 근무 환경과 정당한 대우가 우수 인재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자 반도체 경쟁력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노사정 협의의 '범위'다. 삼성은 지난달 29일 총 2655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평택캠퍼스·용인 국가산업단지 등 반도체 클러스터 육성에 2030조원을 투입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로봇·배터리·정보기술(IT) 부품·소재를 중심으로 호남·충청·영남에도 625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호남엔 총 425조원을 투자하는데 이 중 반도체에만 400조원을 투입한다. 이는 개별 사업장의 복리후생을 넘어 그룹의 미래 투자 배분·생산거점 전략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개정 노동조합법은 노동쟁의 대상으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추가했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해석지침을 통해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은 단순히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만 있는 단계의 결정이 아니다"라며 "근로자 지위 또는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으로 변동을 초래하는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은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노조와의 투자 협의, 노란봉투법 후폭풍?

이 기준을 반도체 투자 발표에 대입하면 '적정선'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규 공장에서 일할 근로자의 안전, 숙소·통근·복리후생, 근무제도, 전환배치, 고용 안정 등은 노조가 의견을 낼 수 있는 의제다. 반면 광주에 팹을 지을지, 얼마를 투자할지, 어느 시점에 착공할지, 용인·평택·광주 간 생산능력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경영진이 책임져야 할 경영판단에 해당된다. 만약 노조가 노사정 협의체를 통해 후자에 관한 사안도 사실상 협의 대상으로 삼으려 할 경우 노사 간 시각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경총이 강조한 대목도 이 지점. 경총은 일부 대기업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조합원에게 배분하는 제도를 단체협약에 명문화하려는 데 대해 "기업 이익의 직접적 배분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기업은 노조의 기업 이익 배분 요구에 응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이를 '위법한 쟁의행위'로 못 박았다.

호남 투자 협의 요구도 기업의 자원 배분과 투자 우선순위에 노조가 공식 참여하겠다는 점에서 '영업이익 N%' 청구서를 내밀었던 당시와 같은 선상에 있다.

개정 노동조합법이 노동쟁의 대상에 '사업경영상 결정'을 포함한 후폭풍이란 관측도 나온다. 경총이 앞서 공개한 '노란봉투법 시행 관련 100개 주요 기업 이슈 진단' 결과를 보면 응답기업 중 87%는 개정법 시행이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 사업경영상 결정이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영계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노조 '투자 결정' 개입 땐 시장 변동 대응 유연성↓

올해 노사관계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름을 나타냈다. 경총의 '2026년 노사관계 전망조사'에서 응답기업 가운데 72.9%는 올해 노사관계가 지난해보다 더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는 83.6%가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갈등 및 노동계 투쟁 증가'를 지목했다.

호남 반도체 투자처럼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프로젝트일수록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커진다. 주주들도 뿔이 났다.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이날 "이것은 '노사정(勞使政)'의 문제가 아니라 '주사정(主使政)'의 문제"라며 "회사가 벌어들일 미래의 거의 전부를 향후 15년에 걸쳐 어디에 쏟을 것인가 하는 회사의 명운을 가르는 이 결정의 자리에, 정작 그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말했다.

기업 경영 여건을 고려할 때 노사정 협의체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경총의 '2026년 기업 경영전망 조사'를 보면 경영계획을 세운 기업들의 내년 기조는 현상유지 39.5%, 긴축경영 31.4%, 확대경영 29.1% 순이었다. 긴축경영을 택한 기업의 구체적 시행계획으로는 '인력운용 합리화'가 61.1%로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백조원대 투자 판단이 노사정 협의체 논의에 묶이면 기업은 시장 변화에 맞춘 의사결정을 제때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노조 투자 협의 요구, 분명한 선 있어야"

물론 초기업노조의 문제제기를 모두 '경영 개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반도체 팹은 전력·용수·환경·안전·정주 여건이 맞물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실제 근무할 구성원들이 산업안전, 생활 인프라, 처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노조 본연의 역할에 가깝다. 우수 인재 확보가 반도체 경쟁력의 토대라는 노조 주장도 기업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요구들이 투자 지역, 규모, 속도, 생산거점 배분 등의 논의로도 언제든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초기업노조의 투자 협의 요구가 타당성을 얻으려면 선이 분명해야 한다"며 "산업안전이나 정주 여건, 근무환경, 전환배치 관련 내용은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지만 이를 빌미로 투자 여부와 규모를 좌우한다거나 공장 위치와 착공 시기,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조가 현장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와 회사의 경영 판단을 견제하는 권한은 엄연히 다르다"며 "이 경계가 흐려질 경우 반도체 투자는 노사 갈등이라는 또 다른 변수를 떠안게 된다"고 했다.

김대영/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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