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545조 쌓아두고 지켜만 봤다"…투자 멈춘 버핏,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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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사진=AP)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 (사진=AP)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투자사 벅셔해서웨이가 사상 최대 규모의 현금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자사주 매입도 멈췄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등하는 가운데 버핏 특유의 신중한 투자 기조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평가다.

벅셔, 자사주 매입 멈추고 사상 최대 현금 보유

지난 1일 공개된 3분기 실적에 따르면 벅셔의 현금 보유액은 3817억달러(약 545조원)로 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 말(3440억달러)에서 다시 크게 늘었다. 저평가된 자산을 찾아 투자하는 가치투자 철학을 고수해온 버핏이 AI 광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현금을 계속 쌓는 이유에 대해 시장에서는 “현재 주식시장이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또 벅셔는 올 들어 9월까지 단 한 차례도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버핏은 과거 “자사주 매입은 주가가 회사의 내재가치를 밑돌고, 매입 후에도 충분한 현금을 보유할 수 있을 때만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주가가 하락한 상황에서도 매입을 중단한 것은 벅셔 주가가 내재가치보다 낮지 않다고 판단했거나, 향후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해 현금을 더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은행 UBS는 “내년까지 벅셔의 자사주 매입이 재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버핏의 은퇴 발표 후 벅셔 주가는 맥을 못추고 있다. 미국 증시의 벤치마크인 S&P500지수가 올들어 급등한 것과 대비된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벅셔 클래스B 주가는 버핏이 은퇴를 깜짝 발표한 지난 5월 이후 11.53% 하락하며 S&P500 지수 상승률(20.28%)에 크게 뒤처졌다. 벅셔 주가가 벤치마크지수를 크게 밑도는 것은 2020년 이후 처음이다.

버핏의 은퇴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버핏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버핏의 존재감이 벅셔 주식에 부여하던 상징적 가치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95세의 워런 버핏이 올해 말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레그 에이블 비보험 부문 부회장이 후임으로 취임하면서 벅셔의 ‘버핏 프리미엄’이 빠르게 없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버핏은 다음달 10일 추수감사절 서한을 끝으로 연례 주주서한 집필을 마무리한다. 비즈니스와 투자에 관한 그의 통찰을 담은 이 서한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성경’처럼 여겨져 왔다.

다만 벅셔의 실적은 견조했다. 벅셔의 3분기 순이익은 307억9600만달러(약 44조원)로, 지난해 3분기(262억5100만달러)보다 크게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보험 부문 실적 반등에 힘입어 135억8500만달러(약 19조4000억원)로 급증했다.

'버핏 없는 벅셔'전망은 엇갈려

미국 투자은행 KBW는 최근 벅셔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낮췄다. KBW는 버핏의 부재를 비롯해 자동차 보험 부문 수익성 악화, 철도 운송시장 성장 약화, 친환경 에너지 세제 지원 축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마이어 실즈 KBW 애널리스트는 “버핏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쌓아온 투자자들에게 벅셔에 투자하는 논리는 버핏 그 자체”라고 말했다.

버핏은 다른 상장사와 달리 분기별 실적 콘퍼런스콜을 열지 않고 실적 전망도 제시하지 않는 독특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러나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버핏 퇴임 이후 이런 ‘벅셔식 관행’이 더 이상 투자자들에게 용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무제표 역시 일부 주관적 판단과 추정이 포함돼 불투명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일각에서는 벅셔에 대한 단기 과열이 해소되는 정상적인 조정 과정일 뿐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벅셔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은퇴 발표 직전 1.7배로, 10년 평균(1.3배)을 웃돌며 ‘고평가’ 구간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벅셔의 오랜 투자자인 크리스 블룸스트란 셈퍼어거스터스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은퇴) 발표로 인해 주가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 당시 주가가 과대평가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벅셔 내부 누구에게 물어봐도 에이블 부회장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블룸스트란 대표는 최근 몇 달간 벅셔 지분을 추가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장기 투자자인 자산운용사 노스스타그룹의 헨리 애셔 대표도 “버핏이 있든 없든 벅셔의 사업은 계속해서 막대한 현금 흐름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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