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리는 이유[이은화의 미술시간]〈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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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밝고 행복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년·사진)은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가정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준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앉아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고, 언니로 보이는 분홍 드레스의 소녀는 뒤에 다정하게 서 있다,

르누아르는 평생 경쾌하고 행복한 그림을 그렸지만, 그의 유년 시절은 그림과 정반대였다.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부터 도자기 공방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어렵게 화가가 됐지만, 여느 인상주의자들처럼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조롱만 받기 일쑤였다.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붓을 내려놓지 않고 묵묵히 나아간 덕에 30대 후반이 돼서야 비로소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51세가 되던 1892년은 르누아르에게 최고의 해였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미술관에 전시할 작품을 처음으로 의뢰했기 때문이다. 국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크게 기뻤지만, 부담도 컸다. 고심 끝에 그는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그렸다. 많은 이들이 지켜볼 것이었기에,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같은 구도와 인물을 놓고 다섯 번이나 다시 그렸다. 피아노의 방향을 바꾸고, 조명을 조절하고, 인물들의 옷과 포즈를 바꿔가면서 가장 조화롭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장면을 그리고자 했다. 그 첫 번째 버전이 바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이 그림이다.

비록 과거는 불우했지만, 그림은 그가 평생 꿈꾸던 이상적인 행복을 담고 있다. 두 소녀는 아름다움을, 피아노는 예술을 상징한다. 누군가 그에게 예쁜 그림만 그리는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 “왜 그림이 예쁘면 안 되나요? 세상에는 불쾌한 것이 너무도 많은데.” 예쁘고 행복한 장면을 그리는 것은 그에게 현실의 고통을 잊고 아름다움을 지켜내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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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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