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후티 반군에 대규모 공격을 가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16일(현지 시간) 후티의 배후인 이란까지 직접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같은 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란은 너무 오랫동안 후티를 지원해 왔다. 물러서야 한다”며 이란을 겨냥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역시 CBS방송에 출연해 “후티 지원을 멈추라.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서방 군함과 선박을 공격하는 일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될 것”이라고 이란에 경고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핵심 외교안보 인사들이 동시에 이란을 정조준하면서 향후 미국이 이란과 이란이 지원해온 후티, 하마스, 헤즈볼라 등 중동 내 반(反)미·반이스라엘 무장단체들에 대한 압박 강도를 더욱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란과 이 무장단체들은 이른바 ‘저항의 축’으로 불려 왔는데, 지난해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의 집중 공격으로 사실상 무력화 됐다. 이에 따라 미국이 실질적으로 마지막 남은 친이란 무장단체인 후티에 대한 집중 공격에 나서며 이란의 무장단체 활용 전략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을 본격 저지하는 단계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왈츠-루비오-헤그세스 모두 경고
왈츠 보좌관은 이날 ABC방송에 출연해 하루 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후티 공격 목표가 “첫째, 후티 지도부를 제거하는 것이고, 둘째, 이란에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하는 건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하메네이가) 핵 버튼에 손가락을 대고 있는 세상은 있을 수 없다”며 “이란은 핵 프로그램을 넘기고 포기하는 방식으로 검증 가능하게 해결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러 다른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비오 장관 또한 “이란의 지원이 없었다면 후티가 이런 일(미국 공격)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미국은 15일 예멘 수도 사나를 포함해 다양한 지역의 후티 거점을 공습했다. 이로 인해 최소 53명이 숨졌다. 후티도 16일 홍해 일대에서 활동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해리 S 트루먼’을 향해 탄도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발사하며 보복에 나섰다. 다만 미군은 대부분의 후티 드론을 격추했고 일부 미사일은 비행 중 오작동으로 바다에 추락했다고 밝혔다.트럼프 2기 행정부는 후티에 대한 공격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루비오 장관과 헤그세스 장관은 모두 후티를 ‘해적 무리(band of pirates)’라고 지칭했다.
특히 헤그세스 장관은 “후티에 ‘가차 없는(unrelenting)’ 공격을 하겠다. 후티가 (서방) 함선에 대한 사격을 중단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공격도 멈출 것”이라며 “힘을 통한 평화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루비오 장관도 “후티가 서방 선박을 공격할 능력을 상실할 때까지 후티에 대한 공습을 계속하겠다”고 동조했다.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은 “이란은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위협에 단호하고 결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맞섰다. 또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에스마에일 바카에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알리 하메네이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보낸 서한을 수령했다며 “서한을 면밀히 검토한 후 회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움직임을 경계하면서도 협상에는 열려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전투원 35만 명 후티 궤멸 쉽지 않을 듯
다만 미국이 후티를 무력화시키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 이스라엘,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오랫동안 군사 작전으로 후티 무력화를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유엔과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 등에 따르면 후티의 전투원 수는 35만 명에 달한다. 최대 사거리가 2000km에 달하는 미사일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실전 경험도 풍부하다. 수도 사나를 접수한 2015년 이후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아랍연합군’과 전쟁을 벌였고, 이들이 가한 수천 번의 공습 속에서도 아직 건재하다. 지난해 유엔 보고서는 “후티가 제한적 역량을 가진 ‘국지적 무장 단체’에서 ‘강력한 군사 조직’으로 변모했다. 점령지를 넘어선 작전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후티는 1992년 예멘 내에서도 특히 가난하고 낙후된 북부 사다주에서 청년운동으로 출범했다. 당시 시아파 분파인 자이드파의 부흥을 외친 무함마드 알 후티와 형제 후세인 알 후티가 이 운동을 주도해 이들의 성을 땄다.
예멘은 1990년부터 2011년까지 장기집권했던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이 ‘아랍의 봄’(중동의 민주화 운동)으로 실각한 뒤 2015년 내전에 휩싸였다.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수니파인 정부군과 시아파인 후티를 지원해 왔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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