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등이 같은 게 수백, 수천 마리는 뛰어다니길래 등산 인생 최초로 중도 하산했습니다.”(경기 수원 광교산 등산객 A씨)
최근 광교산, 경기 용인 석성산과 서울 수락산·불암산 등 수도권 산속에서 ‘갈색여치’(사진)로 추정되는 해충이 다수 목격돼 등산객 사이에서 불쾌감을 일으키고 있다. 주로 중·남부 산지에서만 출현하던 이 곤충이 서울 등 북부 지역까지 확산한 배경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남부권 초토화한 해충 북상
18일 SNS 등을 중심으로 산을 오르다가 갈색여치를 목격했다는 등산객의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소름 끼치고 혐오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평소 종종 불암산에 오른다는 A씨는 “최근 들어 꼽등이 같은 게 발에 챌 정도로 많아 당분간은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다른 등산객 B씨는 “수락산에 올랐더니 이집트 메뚜기떼도 아니고 귀뚜라미 닮은 곤충이 엄청나게 보였다”고 했다.
갈색여치는 주로 참나무류와 과일나무 잎, 열매를 갉아 먹는 토종 해충이다. 손가락만 한 크기로 두툼한 갈색 외피와 길고 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주로 4월 중순부터 부화해 물가 근처, 산속 등에서 5~6월 빠르게 대발생한 뒤 7월께 산란기를 지나며 일생을 마친다. 사람에 전염병을 옮기기보다 대발생 시기 농경지로 이동해 농작물을 해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닐봉지도 뜯는 날카로운 턱으로 사람을 물기도 한다. 연가시의 기생률이 높은 숙주 중 하나로 시각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갈색여치는 2007년 충북 영동 등에서 떼로 창궐해 20㏊ 이상의 과수농가에 피해를 줬다. 2010년대까지도 중부권 위주로 돌발적으로 발생했으나 이제 수도권 지역까지 북상했다. 이상훈 국립생태원 기후변화연구팀장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주로 서식하던 갈색여치가 최근엔 서울, 강원 설악산 등지에서까지 발견되고 있다”고 했다.
◇이상 기후에 따른 ‘기온 상승’ 영향
갈색여치의 북상은 기후변화의 결과로 기온에 민감한 곤충 생태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갈색여치는 과거에는 일반 곤충이었으나 밀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부터 해충으로 여겨지게 됐다. 갈색여치는 특히 알 상태로 월동하는 과정에서 기온이 높을수록 생존율과 부화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농업생태연구소 관계자는 “갈색여치 알은 2~3년 만에 부화하기도 하는데 겨울 기온이 높아지면서 부화 확률이 높아졌다”고 했다.
서울시와 일선 자치구 등은 갈색여치의 공식 방역 지침을 마련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대발생 곤충 관리에 대한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노원구 관계자는 “산속 다른 생명체들을 해칠까 봐 박멸보다 대발생 지역 위주로 약을 치거나 유충 방역에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초래한 병해충 확산이 수도권 도심 환경에서 더욱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이날 동양하루살이,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등 유행성 생활불쾌곤충의 대량 발생을 고려해 영동대교 한강 수면 위 부유식 트랩(바지선), 은평구 백련산 일대에 광원·유인제 포집기를 운영하는 등 친환경 방역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