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 간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법정 공방으로 번진 노노 갈등도 선명한 대립각을 드러내고 있다. 비반도체 부문 조합원들 중심으로 구성된 삼성전자 노동조합 동행(동행노조)은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가 재량권을 남용해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했다고 날을 세웠다.
"초기업노조, 재량권 남용…공정대표의무 위반"
강문혁 법무법인 대정 대표변호사는 27일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히 소수노조를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에 참여시키지 않은 사안이 아니다"라며 "(초기업노조가) 투표 참여를 (동행노조에) 공식 요청했다가 하루 만에 뒤집은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앞서 평균 임금 6.2% 인상, 반도체 사업을 맡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 신설 등을 담은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초기업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이날 오전 10시까지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투표율은 전날 오후 이미 90%를 넘어섰다. 투표권을 가진 조합원 과반이 참여해 과반 찬성을 달성할 경우 합의안은 최종 확정된다.
문제는 DX부문 중심의 동행노조 조합원들이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노노 갈등이 격화된 것. 동행노조는 전날 오전 수원지법에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 절차를 즉각 중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첫 심문기일은 오는 29일 오전 10시로 잡혔다.
강 변호사는 초기업노조가 동행노조에 대해서도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한다고 봤다. 동행노조가 공동교섭단에서 빠진 것과는 상관없이 교섭 절차에 참여했던 만큼 임단협 효력이 미치는 소수노조 조합원 이익을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표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강 변호사는 "공동교섭단에 참여했던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초기업노조는) 여전히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한다"고 말했다.
공정대표의무 위반 주체가 초기업노조란 점도 강조했다. 초기업노조는 노사 과정에서 삼성전자 첫 과반 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교섭대표노조인 전삼노로부터 교대노조 지위를 위임받은 형태로 노사 교섭을 진행해왔다. 이 때문에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하는 주체도, 이를 위반한 조직도 초기업노조란 설명이다.
강 변호사는 "초창기에는 전삼노가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교섭에서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이 대표 교섭위원으로 서명했다"며 "잠정 합의안도 전삼노가 아니라 초기업노조 대표자가 서명했기 때문에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초기업노조"라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복수노조 업무매뉴얼도 초기업노조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뒷받침할 근거로 제시됐다.
강 변호사는 "공동교섭단에 참여한 소수노조가 교섭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절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약의 효력은 미친다"며 "쟁의행위와 관련해서는 투표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내용까지 있다"고 말했다. 동행노조가 공동교섭단에서 빠졌다는 사정만으로 잠정 합의안 찬반투표와 관련한 절차적 권리가 사라졌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초기업노조, 반나절 만에 투표권 없다고 통보"
동행노조 측이 가장 문제 삼는 대목은 투표권 배제 과정이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초기업노조는 잠정합의안에 서명하기 전 동행노조에 찬반투표 참여를 공식 이메일로 요청했다. 투표 종료일인 27일에 결과를 이메일로 보내달라고도 했다는 것. 잠정합의안 체결일과 이튿날 오전에도 같은 취지의 요청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투표권자 조합원 명부를 투표일 전날인 21일 오후 2시 기준으로 일치시켜 달라고도 요청했다.
하지만 21일 저녁 초기업노조가 태도를 바꿨다. 강 변호사는 "동행노조가 투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21일 저녁 최 위원장이 공식 이메일로 투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냈다"며 "그다음 날인 투표 당일에는 다시 공문으로 투표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권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아무런 이유 없이 180도 바꿔버린 것"이라며 "투표권을 주겠다고 한 시점은 이미 동행노조가 공동교섭단 참여 종료 의사를 알린 이후였다"고 했다. 이어 "그 사정을 알고도 투표권을 주겠다고 공식 의사표시를 해놓고 아무런 변동 사항도 없는데 (투표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 것이 재량권 남용이라는 게 핵심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초기업노조가 돌연 입장을 바꿀 수 있었던 법적 근거 중 하나로 2020년 대법원 판례가 거론되고 있다. 대법원은 당시 교섭대표노조가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 과정에서 소수노조 조합원을 참여시키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강 변호사도 이 판례가 초기업노조 측 반론의 핵심 근거가 될 것으로 봤다. 다만 이번 사건은 사안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강 변호사는 "2020년 대법원 판례는 단순히 참여를 안 시켜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취지"라며 "이번 사건은 참여시켜주겠다고 공식적으로 두 번이나 통보했는데 갑자기 하루 만에 뒤집은 경우"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 법리는 교섭대표노조가 재량권을 남용하면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며 "이번 사건은 단순히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보다 더 심하게 재량권을 남용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동행노조는 투표 절차 중지 가처분과 별도로 잠정합의안 효력 정지 가처분도 검토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노 갈등은 투표 절차를 넘어 합의안 효력·절차적 하자 여부를 둘러싼 후속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남겨둔 상태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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