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대화하고 위로 받는다”… 일상 곳곳 스며든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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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 ‘1인 1로봇 시대’ 성큼… 삼성-LG-SK, 생활로봇 전면전
AI 기반 ‘볼리’ ‘Q9’ 등 출시 예고… 옷 골라주거나 가전제품 제어
고령화로 돌봄 로봇 수요도 급증… 챗 GPT 탑재 ‘효돌’ 전국에 보급
거동 돕는 웨어러블 로봇도 나와… 서비스 로봇 시장 연 19% 커질 듯
글로벌 휴머노이드 패권 경쟁 치열… 美-中 등 민관 투자 늘려 산업 육성
韓 로봇 기술은 이제 걸음마 단계

AI 기반 가정용 로봇 ‘볼리’. 삼성전자 제공

AI 기반 가정용 로봇 ‘볼리’. 삼성전자 제공
《눈앞에 온 ‘1인 1로봇 시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로봇을 사용하는 ‘1인 1로봇’ 시대가 눈앞에 왔다. 집안일을 하고 건강을 관리해 주는 ‘집사 로봇’, 노인과 장애인의 보행을 돕고 말벗 역할을 해주는 ‘돌봄 로봇’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3일 서울 송파구의 운동전문센터에서 이모 씨(78)가 트레이너의 지시에 맞춰 재활운동에 땀을 쏟고 있었다. 여느 재활센터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한 가지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 씨가 ‘로봇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8년 전 낙상 사고로 경추 수술을 받은 이씨는 허리 통증이 악화되고 다리에 힘이 빠져 보조보행기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다. 그는 국내 로봇기업 위로보틱스의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을 구매하고, 일주일에 한 번 ‘윔 보행운동센터’를 찾아 맞춤형 걷기 훈련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이 탑재된 로봇은 근력 강화를 돕고 그간 운동 결과를 분석해 준다. 이 씨는 “첫 체험 당시에는 발을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로봇 덕분에 걷는 데 자신감이 생기고 오래,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3일 로봇기업 위로보틱스가 운영하는 보행운동센터 트레이너가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을 착용하고 서울의 한 공원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3일 로봇기업 위로보틱스가 운영하는 보행운동센터 트레이너가 웨어러블 보행 보조 로봇을 착용하고 서울의 한 공원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로봇이 일상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AI 기술 발전에 힘입어 사람의 움직임을 보조하거나 집안을 관리하고, 감정을 어루만지는 정서 교감 역할까지 로봇이 전 영역에서 인간의 동반자로 자리 잡고 있다. 휴대전화처럼 누구나 로봇을 사용하는 ‘1인 1로봇 시대’가 가까워지면서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제조 현장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로봇을 구입하고 쓰는 시대가 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집안일 돕고 건강도 관리해주는 ‘집사봇’

삼성전자에 따르면 AI 기반 가정용 로봇 ‘볼리’가 올해 한국과 미국에서 출시된다. 노란색 공 형태를 한 볼리는 삼성전자가 구글 클라우드와 협력해 만든 생활 밀착형 로봇으로 ‘집사 로봇’이란 별명이 붙었다. 일정 관리나 가전 제어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케어, 수면 등 건강 관리까지 집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일을 처리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볼리는 구글 AI 모델 제미나이의 멀티모달 기능과 삼성전자 자체 언어모델을 결합해 오디오, 카메라, 센서 정보를 통합 분석해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그라운딩’ 기능을 통해 구글 검색과 연동된 신뢰할 수 있는 출처의 정보를 기반으로 건강·웰빙 관련 조언을 제공하는 것도 강점이다.

예컨대 사용자가 “오늘 어떤 옷을 입을까”라고 물어보면 사용자의 패션 스타일을 인식해 옷차림을 추천하고, “요즘 잠을 못 자 피곤해”라고 말하면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고 수면 관련 정보까지 제공한다. 사용자가 외출했을 때 반려견이 집을 엉망으로 만들면 스마트폰으로 해당 현장 사진을 보고하거나 반려견과 놀아주는 것도 가능하다.

LG전자도 올해 하반기(7∼12월) 이동형 AI 홈허브 ‘Q9’ 출시를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볼리가 동그란 원 형태인 반면 Q9은 두 다리에 바퀴가 달린 직관적 로봇의 모습이다. Q9은 사용자를 따라다니거나 집 안을 돌아다니며 가전 상태를 점검하고 사용자 명령에 따라 각종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다. Q9에 탑재된 카메라, 스피커, 다양한 홈 모니터링 센서가 집 안 곳곳의 실시간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전 제어를 돕는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SK그룹도 로봇 가전시장에 뛰어들었다. SK네트웍스와 SK매직은 23일 웰니스 로보틱스 브랜드 ‘나무엑스’를 공개했다. 첫 번째 제품은 7월 출시되는 웰니스 로봇으로 공기 청정, 생체정보 측정, 대화형 서비스 등 세 가지 주요 기능을 탑재했다. 오염원을 감지하면 자율주행으로 해당 장소에 이동해 공기를 정화하고,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체온, 맥박, 혈압, 산소포화도 등 주요 생체 정보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SK그룹은 향후 미국과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며 웰니스 로봇 시장을 선도한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 고령화 시대, 로봇이 돌봄을 책임진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돌봄 로봇의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AI 돌봄 로봇은 대화를 통해 감정을 교류하고 외로움을 줄여주는 정서 교감형, 식사와 약을 먹으라는 알림을 주거나 쓰러지는 등 이상한 응급 움직임을 감지하는 건강 모니터링형, 보행을 보조하고 낙상을 예방하는 이동 보조형 등으로 크게 나뉜다.

돌봄 로봇 개발이 가장 활발한 곳은 일본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약 29.6%에 달하는 일본은 일찍이 부족한 돌봄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발 빠르게 나섰다.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AIST)가 개발한 반려 로봇 ‘파로’가 대표적이다. 갓난아기 크기의 흰 물개 형태의 귀여운 외관을 가진 파로는 감정을 표현하고 반응하며 노인의 불안과 우울감을 완화하는 데 효과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경증 치매 환자, 자폐아, 암 환자 등을 대상으로 소통 능력 향상 등 치료 효과를 인정받아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신경 치료용 의료기기로 승인받았다.

와세다대에서는 휴머노이드 간호 로봇인 ‘에이렉’을 개발하고 있다. 이 로봇은 일본의 급속한 고령화와 만성적인 노인 요양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토 타입 간병인으로 개발되고 있다. 150kg 무게의 AI 기반 로봇 에이렉은 환자의 몸을 옆으로 굴려 기저귀를 갈거나 욕창을 예방하는 동작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관련 기술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위로보틱스는 근력이 부족한 노인이나 질병으로 걷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보행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해 출시했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AI가 분석해 발걸음에 맞춰 지원하는 로봇으로 출시 1년 만에 500대가 판매되었으며 전체 사용자의 60%가 60대 이상일 정도로 노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신규 모델 ‘윔 S’의 가격은 299만 원이다.

산업용 로봇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웨어러블 로봇은 최근 근력이 부족한 노인이나 장애인의 보행을 도와 피로도를 줄여주고 근력 강화 운동에 활용되는 등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어린아이 모습을 한 인형 형태의 반려로봇 ‘효돌’은 홀로 사는 노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등 AI를 기반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챗GPT를 탑재한 신규 모델을 출시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효돌과 나눈 대화 등 사용 데이터가 실시간 전송돼 보호자가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어르신의 상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국 지자체에 보급되며 1만 대가 넘는 효돌이 사용되고 있다.

● 무인 카페 운영부터 로봇 빌딩 구축까지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은 2024년 224억 달러에서 2032년 901억 달러까지 연평균 19.2%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사노동은 물론이고 정서 교감, 건강관리까지 맡는 다기능 로봇이 소비자 일상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내 주요 백화점, 프랜차이즈 매장,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미 청소·순찰·배달 기능을 수행하는 로봇이 상시 운영 중이다. 특히 로봇을 활용한 무인 배송과 로봇 바리스타 등 서비스 분야의 로봇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AI 서비스 로봇 스타트업 엑스와이지(XYZ)는 무인 로봇 카페 등 유통 분야를 시작으로 일상 속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엑스와이지 자회사를 통해 서울 성동구에서 무인으로 운영하는 로봇 카페 ‘라운지엑스’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주문부터 커피 추출, 디저트 제공까지 전 과정을 모두 로봇이 담당한다.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고르고 결제를 마치면 로봇이 커피를 능숙하게 내리고, 디저트까지 트레이에 올려준다. 메뉴가 완성되면 로봇이 손을 흔들며 인사까지 건넨다.

엑스와이지는 일반적인 자판기형 로봇 카페와 달리 고객과의 ‘상호 작용’에 중점을 둔 설계를 차별점으로 내세운다. 로봇은 XY축 이동뿐만 아니라 좌우까지 총 7축 동작이 가능해 사람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 매장 내 설치된 AI 비전 카메라와 로봇이 연동돼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로봇은 즉시 멈추고, AI 카메라가 장애물을 인식해 동선을 자동 조정한다.

커피 한 잔당 제조 시간은 35∼45초. 사람이 제조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병렬 제조 알고리즘을 통해 34잔을 동시에 만들 수 있어 하루 500잔도 거뜬하다.

이 카페는 엑스와이지가 그리는 ‘빅픽처’의 일부다. 엑스와이지는 커피 로봇과 디저트 로봇, 자율주행 배송 로봇, 청소 로봇을 하나로 연결한 ‘로봇 빌딩’을 구상하고 있다. 센서와 AI 비전 기반의 감지 기술, 사물인터넷(IoT) 연동 시스템, 디지털 트윈 환경 등을 통해 건물 내 로봇들이 서로 소통하며 ‘스마트 빌딩 운영’을 실현하는 게 목표다.

엑스와이지는 서울시 지원 사업을 통해 해당 기술을 적용한 ‘로봇 빌딩 시범 모델’을 구축 중이며, 내년 상반기(1∼6월) 실증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자사 커피 브랜드인 ‘라운지엑스’를 통해 로봇 상용화 테스트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서원희 엑스와이지 전략기획실장은 “로봇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사람과 유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리테일에서 빌딩, 나아가 가정까지 로봇 도입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AI가 불붙인 전 세계 휴머노이드 경쟁

로봇 대중화의 배경에는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자리 잡고 있다. AI는 로봇의 ‘두뇌’를 만들어낸다. 예전처럼 정해진 명령만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상황을 인지하며 판단하는 ‘지능형 로봇’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GPT-4, 제미나이, 미스트랄 등 초거대 언어모델(LLM) 및 멀티모달 AI가 상용화되면서 로봇이 이제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감정을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모습을 닮은 휴머노이드 형태로 로봇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를 둘러싼 패권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에서 앞선 기업은 테슬라다. 테슬라는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를 1만 대 생산해 자사 공장에 배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도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AI에 투자했다. 구글 AI 개발 조직인 딥마인드는 AI 모델 제미나이를 적용한 휴머노이드 로봇 ‘제미나이 로보틱스’ 등을 공개했는데 소풍 도시락 싸기, 알파벳 블록으로 단어 조합하기 등 섬세한 작업도 스스로 수행한다.

중국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육성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분석한 결과 유니트리, 유비테크, 애지봇 등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사 6곳에서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 1000대 이상을 각각 양산할 계획이다. 특히 중국 유니트리는 올해 초 항저우시에서 1만 m2 규모의 새 공장을 가동하며 사업을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

한국은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다소 뒤처진 모양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100’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2월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모델을 공개한 전 세계 66곳 기업 중 중국 기업이 전체의 61%인 40곳을 차지했다. 미국·캐나다 기업이 24%(16곳)로 뒤를 이었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의 로봇 자회사 레인보우로보틱스 단 1곳에 불과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 최초로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KAIST 연구진이 설립한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또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면서 로봇을 미래 먹거리로 키운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두산로보틱스도 올해를 AI 기술 혁신 원년으로 삼고, 하드웨어 중심인 지금의 사업 구조를 ‘지능형 로봇 솔루션’으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시에 휴머노이드 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개발(R&D) 조직을 신설하고 인력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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