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19일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가운데 회담 마무리 후 진행될 한·일 정상 만찬의 중심에 설 메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 무대 오른 조선시대 전통 음식
이날 만찬 주메뉴는 조선시대 종가에서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상에 올리던 영계 조림 '전계아(煎鷄兒)'다. 역대 어느 정부도 외국 정상과의 공식 만찬에서 조선 고조리서에 실린 요리를 대표 메뉴로 선택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전계아의 뿌리는 안동 광산 김씨 설월당(雪月堂) 종가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고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보물 제2134호)'에 있다. 조선 중종 시대 학자 김유가 쓴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문 조리서로, '격조 있는 음식 문화'(수운)와 '다양한 조리 비법'(잡방)을 뜻하는 이름 그대로 품격을 갖춘 요리서다.
전계아는 본래 안동 내륙 지방에서 무더운 여름철 기력을 보충하거나 귀빈을 대접할 때 꺼내 든 요리였다. 닭 다리 살에 안동 참마·당근·대파를 더해 참기름에 노릇하게 지진 뒤 간장 양념에 조려내는 방식으로, 오늘날 안동찜닭의 원형으로 통한다.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오기 이전 조리법을 따르기 때문에 매운맛이 없다는 점도 이번 낙점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한식 고유의 결을 살리면서 매운 음식에 익숙지 않은 다카이치 총리의 입맛까지 헤아릴 수 있는 선택이었다.
한 상에 담긴 두 나라
만찬 준비는 설월당 15대 종부 김도은 씨가 이끄는 한옥 호텔 락고재 '수운잡방 헤리티지 다이닝'과 웨스틴 조선호텔이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종가의 손맛과 고증을 호텔의 현대적 조리 기술로 뒷받침하는 구조다.
식탁 구성도 세심하게 짜였다. 전계아와 안동한우 갈비구이가 메인을 나누고, 안동 쌀밥과 신선로가 곁들여진다. '벗을 맞이하는 데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는 안동 선비 정신을 한 상에 풀어낸 셈이다. 디저트로는 한국의 전약(煎藥)과 일본의 모찌를 한 그릇에 나란히 담아 마무리한다.
건배주로는 안동 전통주 태사주에 벚꽃 시럽을 더한 칵테일 '체리블라썸'이 오른다. 안동소주와 나라현 미와가 원산지인 이마니시주조 미무로스기(사케), 짙은 석륫빛의 장테 팡시오 샹볼 뮈지니 비에유 비뉴 2023(원산지 프랑스 부르고뉴)도 만찬주로 함께 제공된다.
산불 딛고 일어서려는 안동의 바람
만찬 메뉴 소식에 가장 귀가 솔깃해진 건 안동의 지역 및 골목상권 상인들이다. 전계아와 혈통이 맞닿아 있는 안동찜닭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황남빵을 맛보고 극찬한 뒤 품귀 현상까지 벌어진 전례도 있다.
상인들의 기대에는 절실함도 배어 있다. 지난해 3월 경북 북부를 초토화한 대형 산불 이후 관광객 발길이 크게 끊겼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이 지역 경제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희선 한경닷컴 기자 gimme_s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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