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소감처럼…책엔 질문과 상상의 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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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 어린이 경제교실' 문해력 수업 현장
이재영 '책 잘 읽는 법' 특강
AI시대 최고능력은 '질문'
책을 읽어야 지식이 쌓여
가짜 뉴스 가릴 힘도 생겨
책 지루하다면 함께 읽어야

7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경제교실'에서 어린이들이 이재영 작가의 '책 잘 읽는 법' 특강을 듣고 있다.  한주형 기자

7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어린이 경제교실'에서 어린이들이 이재영 작가의 '책 잘 읽는 법' 특강을 듣고 있다. 한주형 기자

"한강 작가님도 노벨상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셨잖아요.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이루어진 책이라고.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여러분이 가장 갖춰야 할 능력이 바로 좋은 질문을 하는 거예요."

지난 7일 오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 12층 대강당에서 열린 '매경 어린이 경제교실'. 2000년부터 매달 두 차례 열리는 이 경제교실에서 특별한 독서 수업이 열렸다. '책 잘 읽는 아이의 독서법'을 낸 이재영 작가를 초청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아이들 눈높이에서 교감하는 수업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서 6학년까지 선착순으로 모집된 어린이 50명은 6개의 긴 테이블에 나눠 앉아 작가의 질문에 손을 번쩍번쩍 들며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시발점이라는 말에 '왜 욕을 하냐', '심심한 사과'라는 단어에 '사과가 심심하다고'라는 웃지 못할 반응이 나올 정도로 어린이와 청소년의 어휘력 수준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텍스트를 읽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인 문해력 수준도 처참하다. 책보다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을 가까이 한 결과다. 매일경제신문은 문해력 수준을 그냥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사회적 환기 차원에서 독서 특강을 처음으로 경제교실에 도입했다. 올바른 경제 개념과 함께 책 읽는 습관은 우리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경기 가평에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이기도 하다. 9년 전 가평 설악면에 '당신이 사랑하는 책, 당신을 사랑하는 책'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북유럽BOOK YOU LOVE'라는 독립책방을 열었다. 이곳에서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주도하며 이 노하우와 경험을 책으로 내고 있다.

수업이 시작되자 그는 아이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전국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경기도에서 온 친구들 있나요?"

이재영 작가가 특강을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이재영 작가가 특강을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10명 가까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도 온다고 하더니 진짜다.

어른들은 왜 지루한 책을 읽으라고 할까. 질문이 나오자마자 한 아이가 외쳤다. "공부 잘하라고요."

"맞아요. 책을 읽으면 지식이 쌓이죠. 우리가 입는 옷, 공부하는 책상, 자동차, 비행기, 이런 것들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상상으로 시작됐어요. 세상의 모든 것은 상상과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맞이할 AI 시대도 질문의 근육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AI를 잘 사용하려면 좋은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해요. AI가 거짓말을 진짜 잘해요. 몰라도 아는 척 대답하죠. AI에게 속지 않으려면 지식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진짜 정보는 책에 있어요. 한 작가가 300~500쪽 되는 책을 쓰려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써야 해요. 거짓말은 책으로 출간할 수 없어요."

상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선 왜 영상이 아닌 책이어야 하는지 눈높이 설명도 이어졌다.

"책을 읽는데 '봄에 가족과 함께 꽃밭을 거닐었다'는 문장을 만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봄에 피는 꽃이 머릿속에 죽 생각이 날 거예요. 벚꽃, 개나리, 철쭉, 진달래 등 열 가지 정도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노란색 개나리 영상을 보면 나머지 것들은 상상할 필요가 없지요."

유튜브는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요약해 시각적으로 학습시킨다. 100쪽짜리를 5분으로 줄이는 작업이라면, 책을 쓰는 것은 한 줄짜리 주제를 300쪽으로 늘리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당연히 책을 많이 읽는 아이의 문해력이 쑥쑥 커질 수밖에 없다.

그는 스페인 성장동화 책 '운하의 빛'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독서 방법도 제시했다. 이 책은 프리츠라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소년과 가난한 뒤셀 할아버지의 우정 이야기를 담은 수작이다.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알 수 있어요. 장애인, 가난한 사람, 장애인을 둔 부모 등 내가 모르는 세상을 아는 일이지요.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죠."

내용 중심의 독후감에 그치지 않고 책을 읽고 나서 드는 기분을 솔직하게 쓰는 것도 독서를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자신의 느낌을 자꾸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정해진 제목 말고 나만의 제목을 정하는 연습과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쫙 긋는 방법도 독서를 친구 삼는 좋은 습관이다.

이토록 책의 효능이 좋은데 가까이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지루한 일인 데다 혼자만의 외로운 행위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다 같이 하는 독서 모임은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선생님도 경험했지만 같이 모여서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어져요. 집에 가서 엄마 아빠와 같이 책을 읽어보세요. 그리고 다 함께 얘기하고 제목도 정해보고요."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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