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소설가 한강이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시민들의 진심과 용기를 언급하며 “그렇게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12일(현지시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한강은 12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 진행을 받은 번역가 유키코 듀크로부터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비상계엄 사태)에서 (노벨상 수상을 위해) 출국해야 했으니 얼마나 끔찍(awful)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강은 비상계엄 사태 이틀 만인 지난 5일 출국했다. 그는 이후 상황은 자세하 알지 못한다면서도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지난 6일 각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그는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도 비상계엄 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경찰과 군인들을 언급하며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도 한강은 “광주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시위 현장에) 많이 가셨다”며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참석자들에 설명했다.
많은 시민이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배경에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은 덕분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다. 한강은 “젊은 세대 분들에게 광주로 가는 진입로 역할을 조금은 해줬을 순 있을 것 같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위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 책을 읽고 있는 분들의 사진을 보긴 했다”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 한강은 ‘소년이 온다’의 집필 동기와 관련해 ‘독재자의 딸’ ‘전두환’ 등을 거론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것과 같은 배경이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는 “이 책을 쓴 데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도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겠다”고 언급했다. 또한 “또 하나는 저의 내면적인 원인도 있었다. 당시 ‘희랍어 시간’을 다 써서 출간했는데 다음 책을 쓰려고 했을 때 내면에서 저항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서 한강은 예고에 없던 소설 낭독을 하기도 했다. 당초 이날 행사는 현지 배우들이 한강 작품을 낭독하고 한강은 유키코 듀크와 대담을 할 예정이었다. 한강은 ‘희랍어 시간’ 일부를 우리말 원문으로 낭독했다. 배우 카린 프란스 셸로프의 스웨덴어 번역본 낭독이 이어졌다. ‘희랍어 시간’ 스웨덴어 번역본은 아직 출간되지 않아 현지 독자에 깜짝 선물을 한 셈이 됐다. 스톡홀름에서의 노벨상 관련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친 한강은 곧 귀국해 집필에 매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