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5kg 빠졌다, 부작용도 감수"…'다이어트약'의 유혹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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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약을 사기 위한 손님들로 가득한 다이어트 성지 모습/사진 출처=김세린

과거 약을 사기 위한 손님들로 가득한 다이어트 성지 모습/사진 출처=김세린

"부작용 있는 거 알아요. 그래도 감수하고 먹어요. 한 달에 5kg 빠졌거든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한 의원. 온라인상에서 '다이어트 성지'로 불리며 유명세를 치른 이 병원은 여름철을 맞아 다시 긴 대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대기 시간이 2시간 가까이에 달한다"는 이용 후기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 병원은 최근 옆 건물의 지상 공간으로 확장 이전했으며, 새 진료는 이달 4일부터 시작됐다. 기자가 직접 찾았던 지난 20일 오전에도, 병원이 문을 열기 전부터 환자들이 진료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병원 내부 대기실에는 10~15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건물에서 경비 업무를 맡은 김모 씨는 "오픈 2시간 전인 오전 8시 30분부터 대기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이는데 오늘도 20명 이상이 서 있었다"며 "주말, 평일 구분 없이 줄이 길게 늘어선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병원은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하지 않으면 진료받기 어렵다는 후문이 돌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연차를 내고 병원을 찾았다는 40대 직장인 A씨는 "메스꺼움이나 구토 등 여러 가지 다이어트약의 부작용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면서도 "어차피 다른 병원도 마찬가지라 그냥 감수하고 복용한다. 운동과 병행해, 한 달간 5kg을 감량했다고 말했다.

20대 대학생 B씨는 "벌써 두 번째 약을 타고 있다"며 "딱히 부작용은 없었고 6kg 정도 감량했다"고 전했다.

◇정상체중 범위에도 다이어트 성지 방문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다이어트 성지/사진=유지희 기자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다이어트 성지/사진=유지희 기자

정부는 지난 2023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가 다이어트약 오남용 논란이 불거진 전국 5개 의료기관을 합동 점검했고, 모든 기관에서 식욕억제제 과다 처방 사례가 확인됐다.

이 병원도 당시 과다 처방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해당 병원은 "현재는 규제에 맞게 처방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여전히 향정신성의약품에 해당하는 식욕억제제의 오남용에 대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디에타민(일명 나비약)은 처음부터 처방한 적이 없고 그거 이외의 다양한 약들이 환자에 맞게 나가고 있다"며 "키와 몸무게 등 환자 상태에 따라 여러 식욕억제제 중 적절한 약을 처방한다"고 말했다.

병원 인근 약국 관계자는 "향정신성 약품을 식약처가 규정한 범위 내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원장님이 약을 과하게 처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 구체적인 복용 기준은 없는 경우도 많았고 식욕억제제도 그런 식으로 허가 범위 내에서 처방해 문제가 됐던 거 같다"며 "지금은 식약처가 부작용 우려로 복용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면서, 3개월 복용 시 반드시 1개월은 약을 쉬도록 하는 '휴약기' 개념이 생겨 현재는 그 규제에 맞춰 처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비약 구해요"... SNS에서 활발한 거래

출처=x

출처=x

문제의 중심에 있던 '나비약(디에타민)'은 여전히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SNS, 엑스(X) 등에는 "디에타민 구해요", "원가에 양도해 주실 분" 같은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있으며 디에타민 대리처방 관련 계정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와 함께 처방 인증샷을 공유하고 후기를 나누는 등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나비약은 의존성과 내성, 불면, 두근거림 등 부작용 외에도 과다 복용 시에는 환청이나 환각 등 정신적 이상 증세가 보고된 바 있다. 약의 주성분인 '펜터민'은 식욕을 억제하는 강력한 효과가 있지만,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광고·거래가 금지된 약물이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도 의정부에서는 나비약 처방받고 남은 약을 판매한 20대 여성이 재판에 넘겨져 벌금 500만 원과 추징금 15만 원을 선고받았다.

출처=SNS

출처=SNS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SNS와 인스타그램에서는 '나비약'을 연상케 하는 다이어트 보조제가 버젓이 광고되고 있다. 나비 모양의 정제를 띤 해당 제품은 '나비정'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디에타민과 유사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지적장애까지 유발할 수 있는 약인데 저걸 농담처럼 판다", "제약업계는 윤리의식이 없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해당 제품을 확인한 결과, 향정신성의약품과는 무관한 일반식품으로, 주성분은 갈조류 유래 알긴산염이다. 위에서 팽창해 포만감을 유도하는 원리로 작용하지만, 외형과 이름이 기존 문제 약물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의도적 마케팅을 의심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에 대한 경험담도 엇갈린다. "두 달 만에 15kg 감량했다"는 후기가 있는가 하면 "소화불량과 메스꺼움, 입 마름 때문에 복용을 중단했고, 한 달 반 만에 다시 10kg이 쪘다"는 부작용 사례도 많다. 위고비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소화불량 △입맛 감소 △변비 △무기력 △위장 장애 등이 보고됐다.

◇"의료현장 통제력 미비…가이드라인만으로 부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디에타민, 이른바 나비약은 전 세계적으로 위험성이 높은 약물로 분류되며, 사용을 금지한 국가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고도비만 환자에게도 단기간 사용에 한정해 처방해야 할 정도로 신중해야 하는 약물인데, 정상체중이거나 살이 조금 찐 사람이 단순 다이어트 목적으로 복용할 경우, 체중 감량보다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올라오는’ 심리적 효과에 의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디에타민이나 펜터민뿐 아니라, 유사한 성분인 펜디메트라진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한 약물로 봐야 한다. 정상 체중에서 더 빼고 싶다는 이유로 이들 약물을 복용할 경우 나타나는 효과는 입맛 저하나 기분 고양 정도로, 다이어트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며 "이러한 약물을 장기 복용하거나 과량 처방받을 경우 급성 정신질환이나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약학대학 교수도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수년 전부터 복용 기준과 휴약기 등의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었지만, 의료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며 "문제는 단순한 처방 남용이 아니라, 마른 몸을 미의 기준으로 여기는 외모 지상주의와 결합해 약물 의존으로 번지고 있는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말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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