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故) 김수미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던 일기장이 책으로 출간된다. 40여년 간의 일기 중 특히 말년의 기록에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공황장애 등이 담겨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고 김수미가 1983년부터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일기가 12일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으로 출간된다. 일기 곳곳에는 화려한 배우의 모습 뒤 고통 어린 속내, 일에 대한 열정과 불안, 가족을 향한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겼다.
유가족은 김수미가 말년에 겪었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봐 온 만큼 안타까운 마음에 일기를 공개했다며 책 인세는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책에 따르면, 별세 직전 김수미는 자기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하던 회사와의 분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시기는 아들 정명호 씨가 김수미의 이름을 걸고 식품을 판매해 온 ‘나팔꽃 F&B’의 A씨를 횡령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하고, 상대가 맞불 기사를 내겠다고 맞섰던 때다
김수미는 2023년 10~11월 “하루하루가 고문이다. 기사가 터져서 어떤 파장이 올지 밥맛도, 잠도 수면제 없이 못 잔다”, “지난 한달 간 불안, 공포 맘고생은 악몽 그 자체였다. 회사 소송 건으로 기사 터질까 봐 애태웠다”고 털어놨다.
올해 1월에는 나팔꽃 F&B가 회사 대표이던 정명호 씨를 해임한 뒤 김수미와 함께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해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고인은 “주님, 저는 죄 안 지었습니다”, “오늘 기사가 터졌다. (중략)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는 글을 쓰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수미는 말년에 공황장애도 앓았다. 올해 1월부터는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가족들은 생전 고인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춘 홈쇼핑 방송과 관련해 모두 만류했지만, 회사의 압박 탓에 출연한 것이 가슴 아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기장에는 연기에 대한 애정도 빼곡히 기록됐다.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1986년 4월), “어제 녹화도 잘했다. 연기로, 70년 만에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2004년 1월), “너무나 연기에 목이 말라 있다”(2017년 2월) 등이다.
엄마로서의 모습과 평화로운 삶을 염원하던 고인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김수미는 1985년 일기에서 “앉아 있을 힘도 없는 육신을 끌고 곤하게 천사처럼 자는 딸아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매일 맹세한다. ‘너희를 위해 이 엄마 열심히 살게’”라며 자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다음해에는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어놓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한편 고 김수미는 지난 10월 25일 오전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향년 75세. 사인은 ‘고혈당 쇼크’로 오랜 기간 당뇨를 앓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49재가 이날 오후 2시 경기 용인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