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물론 글로벌 다이닝신에서 몇 년째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르가 있다. 바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날아온 태평양의 해산물, 안데스의 육류, 아마존의 작물이다.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 아시아 베스트 50 레스토랑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페루의 센트럴, 일본의 마즈가 그렇다. 라틴 아메리칸 퀴진은 자연이 우리에게 전하는 깊숙한 시간의 이야기라고 평할 수 있을 만큼 신비하고 익숙한 맛을 선사한다. 최근 방콕과 도쿄, 서울에 이어 미식신의 새로운 터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타이베이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다이닝을 접할 수 있었다.
Zea. 옥수수의 게놈, 즉 DNA의 집합체를 의미하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그 주인공이다. 소박한 이 식재료를 통해 라틴 아메리칸 퀴진의 정체성을 이름으로 담아내려는 호아킨(Joaquin Elizondo Hourbiegt) 셰프의 마음이 엿보인다.
요리사였던 형의 영향으로 18세부터 요리사의 길을 선택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아킨 셰프는 아르헨티나 국립 요리학교를 수료하고 프랑스, 이탈리아, 남미 요리 기술을 익히기 시작했다. 파크하얏트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근무한 뒤 프랑스 파리로 옮겨 미쉐린 레스토랑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가 파인 다이닝의 정수를 익힐 수 있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는데,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새로운 도전을 펼치게 된다.
홍콩으로 이주한 그는 아시아 미식 시장을 마음껏 경험하게 된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리카르도 샤네톤 셰프가 운영하는 라틴 아메리칸 레스토랑 MONO에 수셰프로 합류한 시기부터다.
다양한 국적의 푸디들로부터 받는 피드백, 풍부한 홍콩의 식재료에 매료된 호아킨 셰프는 2022년 Zea라는 이름으로 대만 타이베이에 라틴 아메리칸 다이닝 레스토랑을 연다. 잔잔한 흐름의 타이베이 다이닝신에 이토록 강렬한 루키의 등장이란! 라틴 아메리칸 퀴진을 베이스로 대만 현지의 온화한 기후에서 자라난 독특한 식재료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조합한 구성이 미쉐린 가이드마저 감동시켰다. 오픈한 지 1년여 만에 2023 대만 미쉐린 가이드에 당당히 1스타로 입성했다.
Zea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대만으로 다이닝 사업을 진출하는 경향이 꽤 있는데 아마도 대만의 기후와 식재료의 다양성 때문일 것이다. 연중 온화한 대만의 기후는 식재료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과거 식민지 시대 이곳에 도착한 라틴 아메리카 원산지의 식재료는 여전히 많이 재배된다. 여느 아시아 국가보다 라틴 아메리칸 다이닝을 펼쳐내는 데 매력적인 터전이다.
Zea는 하루에 20명을 위해 요리한다. 그중 14명은 L자의 카운터 바에서 요리가 진행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식사한다. 13가지 크고 작은 플레이트로 구성되는 단일 코스를 맛볼 수 있다. 자고로 한 끼의 다이닝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조력자는 와인이 아닐까. 조금 독특한 장르의 요리를 마주할 땐 소믈리에가 세심하게 배치한 와인 페어링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묵직한 구황작물의 텍스처와 클로브, 너트메그, 아니스 등의 향신료에 걸맞은 제3세계 와인들을 코스마다 다채롭게 즐길 수 있었다. 산미의 아름다움과 향신료의 풍요로운 향미, 싱그러운 올리브 오일 4종을 한데 모아 맛볼 수 있는 구성을 더한 코스 안에서 내년의 여행 계획 중 남미의 맛과 멋을 탐험하는 시간을 넣어야 하나 고심하게 했다.
바나나 엠파나다와 시나몬, 타임과 레몬의 터치를 시작으로 쌉싸름한 콜롬비아 카카오로 만든 타르틀렛에 마테차의 조합에서는 확신의 라틴 아메리카 정취를, 대만의 농업 요충지 윈린 지역에서 자란 오골계나 커피빈으로 표현한 디시들은 그 오리진을 떠올리기도 전에 맛으로 큰 만족감을 안겨줬다.
또한 타이중에 있는 ‘자오 자오 티(ZHAO ZHAO TEA)’의 계화 우롱티를 곁들인 디저트 프티푸르는 확실히 동서양의 아름다운 조화를 깊숙이 펼쳐낸 퍼포먼스로 기억된다. 대만 식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석이 돋보인다는 점이 Zea가 현지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단단한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Zea는 이달 31일부터 사흘간 해비치 호텔&리조트가 운영하는 뉴아메리칸 다이닝 레스토랑 ‘마이클 바이 해비치’ 초청으로 갈라 디너를 연다고 한다. 대만 식재료뿐 아니라 국내의 몇 가지 식재료를 Zea의 라틴 아메리칸 스타일로 해석해 코스를 준비한다고.
프랑스 카비아리 캐비아를 곁들인 ‘추로스’를 시작으로 독도 인근에서 잡은 도화새우를 사용한 ‘세비체’, 콜롬비아 전통 수프 ‘아히아코’, 콜롬비아식 스튜 ‘론돈’ 등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멕시코의 바리아 스튜와 대만의 우육면에서 영감을 받은 ‘할리스코 이 타이베이’,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셰프가 겨울에 즐겨 먹던 ‘오리 요리’ 등의 라틴 아메리카 음식을 경험할 수 있다. 대만 난터우 지역의 초콜릿과 국내산 감태가 어우러진 디저트도 준비된다.
단순히 여행자로서 대만의 미식을 바라본 내게 큰 느낌표를 경험하게 한 호아킨 셰프와 Zea팀. 타이베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들의 맛과 철학을 만나는 일정도 꼭 채워 넣어보길 바란다.
타이베이=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