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은행 대출이 필요한 정 모 씨는 대출상담사 한 모 씨가 좋은 조건의 대출을 알려주겠다고 해 믿었다가 수천만원 피해를 당할 뻔했다. 한씨는 대출 승인에 필요한 거래 실적을 쌓아야 한다며 정씨에게 “회사에서 보낸 자금을 외화계좌에 입금 후 환전하라”고 했고 정씨는 다른 은행계좌에 있던 3500만원을 하나은행 외화계좌로 송금했다. 정씨의 지시에 따라 외화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해 환전하려던 정씨는 하나은행 직원의 만류로 손해를 모면했다. 은행 직원이 “최근 외화계좌를 통한 보이스피싱이 유행”이라며 정씨에게 ‘정말 자신의 의사인지’ 수차례 물은 결과 대출상담을 빙자한 보이스피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씨는 직원의 설득으로 3500만원을 외화계좌에 다시 입금했고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하나은행의 인공지능(AI) 기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성과가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김리진 하나은행 손님행복본부장은 22일 “하나은행은 AI기술 연구전담 조직인 하나금융융합기술원과 협업해 2018년 금융권 최초로 보이스피싱 사고 패턴을 AI로 학습하고 이상 거래를 분석·탐지하는 신 FDS를 도입했다”며 “인공지능이 나선형신경망(CNN) 알고리즘을 통해 사고 가능성을 지능적으로 분석해 피해 예방에 획기적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신FDS 도입·보이스피싱 종합대책을 통해 지난해 2818억(9103건)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했다. 지난 2020년 209억(1874건)에서 2021년 1577억(1만 3804건), 2022년 1814억(1만 3015건) 등 매년 수천억원 피해를 막고 있다.
실제 최근에 발생한 사고패턴을 학습하기 때문에 신종 사기수법에 더욱 신속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김 본부장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이 자금을 이체·인출할 때 은행 모니터링을 피하고자 외화계좌를 통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외화계좌를 통한 보이스피싱 사기 패턴 시나리오를 신 FDS에 적용한 결과 위와 같이 실제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의 보이스피싱 대책이 특히 효과적인 것은 하나원큐 앱을 통해 휴대폰에 설치한 보이스피싱 앱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원큐 앱은 고객이 로그인할 때마다 휴대폰에 보이스피싱 앱이 설치돼 있는지 탐지한다. 보이스피싱 앱을 발견하면 신 FDS에서 즉시 자동정지를 해서 계좌 송금이나 은행 창구에서의 현금 인출을 차단한다. 김 본부장은 “자동정지를 한 후 손님에게 피해 여부를 확인한다”며 “보이스피싱 대부분이 대출빙자, 검찰·경찰사칭 사기를 통해 피해자에게 가짜 금융회사 앱을 설치시킨다. 하나원큐 앱에 탐지기능을 탑재한 후 피해금액을 송금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나원큐 앱에 로그인할 때마다 보이스피싱 앱 설치 여부를 자동 탐지한 결과 월 평균 1000명 이상의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금융·통신업계, AI로 보이스피싱 예방 확대
은행·통신업계에서는 카드 배송·청첩장·부고장을 사칭한 정보유출 사기 유형에는 ‘은행 접속 원천차단’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카드 배송 사칭 수법을 중심으로 피해 금액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하나은행은 피해자 신분증 사진을 취득해 뱅킹 앱 가입 후 자금을 편취할 때 즉시 거래를 정지하고 있다. 은행이 고객의 앱 접속 지역과 접속 기기, 알뜰폰 변경 여부 등을 모니터링해 보이스피싱 단체가 피해자 은행계좌에 접근하는 유형을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금융권뿐 아니라 통신업계에서도 AI를 통한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강화하는 추세다. SK텔레콤은 최근 IBK기업은행과 함께 보이스피싱 솔루션 ‘스캠뱅가드’를 통해 약 2주간 5억 9000만원 규모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에서도 관련 업계의 적극적인 피해예방 조치를 당부하고 있다. 김미영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고객과의 접점에서 대응하는 금융사 임직원들이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보이스피싱 범죄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관련 업계, 수사기관과 유기적으로 협조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