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간직해온 고종의 선물, 140년만에 韓서 다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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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간직해온 고종의 선물, 140년만에 韓서 다시 피어나다

입력 : 2026.06.05 16:54

고궁박물관·덕수궁 '한불수교 140주년 특별전' 8월 2·30일까지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양국이 주고받은 '우정의 기록'
고종이 佛에 보낸 '반화' 재현
조선이 받은 백자 채색병 공개
역대 정상회담 선물도 한자리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 김영희 옥장이 제작한 반화 복제품. 오른쪽 작은 사진은 반화 원본의 소나무와 모란 장식.  국가유산청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 김영희 옥장이 제작한 반화 복제품. 오른쪽 작은 사진은 반화 원본의 소나무와 모란 장식. 국가유산청

"조선의 국왕께서 프랑스 대통령께 여러 선물을 보냈는데, 그중 13세기 유물로 여겨지는 아름다운 사발 두 점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제가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1888년 조선 주재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프랑스 세브르도자박물관의 컬렉션 담당자였던 쥘 샹플뢰리에게 이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2년 뒤 사디 카르노 당시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도자기 선물을 받은 고종은 고려청자와 반화 등 진귀한 공예품을 답례로 보냈다.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40주년을 맞아 당시 고종과 카르노 대통령이 서로에게 보낸 선물이 한자리에서 마주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통령기록관과 공동으로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을 연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관련 문서들의 원본, 고종과 카르노 대통령이 교환한 선물과 관련 기록, 대한민국과 프랑스 역대 대통령이 주고받은 선물과 서신 등을 통해 양국 교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종이 프랑스에 보낸 선물인 '반화'를 고증해 재현한 작품이다. 반화는 진귀한 재료로 화분에 심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재현한 장식 공예품이다. 연꽃잎 모양의 금속 화반 위에 옥, 산호, 진주, 물총새 깃털, 거북이 등껍데기 등의 재료를 사용해 화려하게 장식했다.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인 김영희 옥장이 프랑스 현지에 소장된 반화를 고증해 유물의 원형을 재현하며 섬세하게 제작했다.

고종이 보낸 반화는 청대 공예분경과 유사하면서도 조선 왕실의 미감을 담고 있어 미술사적 의의가 높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한 쌍으로 배치한 구성은 조선 왕실의 대표적 도상인 '일월오봉도'에서와 같이 왕실의 권위와 영원한 번영을 상징하는 전통과 연결된다. 반화 원본은 1953년 카르노 대통령의 후손이 "코리아의 왕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기록과 함께 기증해 현재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국가유산청 측은 원본 유물의 국내 공개를 추진했으나, 국외 운송에 따른 파손 우려로 복제품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교 140주년 기념전에서는 반화 복제품이 총 두 쌍 제작돼 국립고궁박물관과 덕수궁 돈덕전에 한 쌍씩 나뉘어 전시된다.

고종이 선물한 고려청자 두 점도 공개된다. 가족의 화목을 상징하는 두 마리 앵무새가 음각된 '청자 앵무새무늬 대접', 모란과 넝쿨무늬를 양각 기법으로 장식한 '청자 모란 넝쿨무늬 꽃모양 대접'이다. 조선의 왕이 고려청자를 프랑스에 선물했다는 사실은 당시 현지 신문에도 보도될 만큼 관심을 받았다.

프랑스가 조선에 보낸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도 볼 수 있다. 도자기는 유럽에서 '하얀 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고, 18세기 중반부터 프랑스의 대표적인 외교 선물이 됐다. 덕수궁 석조전 실내에서 고종, 순종, 순정효황후, 영친왕, 덕혜옹주가 프랑스가 보낸 '백자 채색 클로디옹 병' 앞에서 촬영한 사진도 전시된다. 이 도자기는 현재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호텔은 과거 영친왕의 저택이 매각돼 개조된 곳이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백미는 역사적 사료인 조약 문서 원본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프랑스 외교사료관이 각각 소장한 조불수호통상조약 문서 원본이 처음으로 함께 공개돼 한문본과 불문본을 동시에 비교해볼 수 있다. 1886년 체결된 조불수호통상조약은 치외법권의 인정, 관세 주권의 제한 등 불평등한 요소가 포함됐으나 조선이 국제 질서에 편입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이기도 하다.

특히 선교 활동 보장 문제를 둘러싸고 '포교'가 아닌 가르치고 훈계한다는 뜻의 '교회' 표현을 조약문에 삽입한 점은 당시 조선의 고민과 외교 전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수교 이후 양국 외교관들의 파견 등을 보여주는 자료, 공사 관련 자료와 '명동성당 건축을 위한 대지 매입 일지' 등 조선 사회에 확산된 천주교 관련 유물도 소개된다.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1888년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오른쪽 사진은 조불수호통상조약 한문본 원본.  국립고궁박물관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후 1888년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오른쪽 사진은 조불수호통상조약 한문본 원본.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는 근대 왕실 교류를 넘어 대한민국과 프랑스가 이어온 외교적 관계도 보여준다. 1986년 파리 정상회담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증정한 은제 그릇, 1993년 서울 정상회담에서 고속철도(TGV) 도입 등과 맞물려 김영삼 대통령에게 선물한 세브르도자제작소의 백자 채색 접시가 공개된다. 2015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증정한 19세기 조선의 모습이 담긴 동판사진 세트, 2018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외교사적 의미를 담아 선물한 '프랑스 혁명사 요약'도 전시된다. 지난 4월 마크롱 대통령의 국빈 방한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고종의 선물이던 반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반화 오마주'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편 덕수궁 돈덕전에서는 반화를 특별히 조명하는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 반화: 상서로운 마음' 특별전이 동시에 열린다. 이 전시는 반화에 장식된 꽃과 나무를 통해 조선 왕실의 길상 문화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장수와 절개를, 모란은 부귀와 상서로움을, 연화와 당초문은 번영과 다산을, 난초와 매화는 고귀함과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활용됐다.

탐스러운 모란꽃이 화면 가득 반복적으로 그려진 '모란도 8폭 병풍'과 황제의 어좌인 '중화전 용상'에 장식된 모란문도 볼 수 있다. 또 조선 후기 난과 매화를 그린 병풍도 전시돼 반화에 담긴 길상의 의미를 한층 더 깊게 살펴볼 수 있다. 해, 구름, 소나무 등 장수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열 가지 길상 소재를 그린 '십장생도 병풍'은 중국의 신선사상에서 유래했으나, 이를 체계화해 독립된 병풍 형식으로 발전시킨 조선 왕실의 길상 문화를 보여준다.

이번 특별전은 평소 국내에서 단독으로 보기 드문 프랑스 외교사료관,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 세브르도자박물관 소장 유물들과 대한민국 대통령기록관의 기록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다.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는 8월 2일까지, 덕수궁 돈덕전 전시는 8월 30일까지.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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