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최대 가상자산 예측시장 플랫폼인 폴리마켓(Polymarket)이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비트코인 베팅 상품에서 일부 트레이더들이 베팅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결제 기준이 되는 비트코인 가격을 일시적으로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을 발견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15일(현지시간) 싱가포르경영대 연구자와 공동 집필한 워킹페이퍼(Working Paper)를 통해 약 두 달 동안 폴리마켓의 5분 단위 비트코인 예측시장을 분석한 결과, 특정 상품의 베팅이 마감되기 직전 수 초 동안 바이낸스(Binance) 거래소에서 특정 방향으로 주문이 집중되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일시적으로 움직였고, 같은 방향으로 베팅한 투자자들이 이익을 얻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같은 거래는 작은 가격 변동만으로도 베팅 결과가 결정될 수 있는 시점에서 가장 활발하게 발생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을 “현물 가격을 조작하기 위한 일시적인 가격 밀어올리기” 라고 규정했다.
실제 폴리마켓이 올해 2월 5분 단위 비트코인 시장을 도입한 이후를 중심으로 약 두 달 동안 약 1만6000개의 계약을 분석한 결과, 결제 직전까지 승패가 거의 50대50이었던 계약에서는 바이낸스의 주문량이 다른 결제 시점보다 평균 3.9배 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바이낸스 거래가 가장 비정상적이었던 상위 10%의 결제 구간을 ‘가격 조작 시도가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구간’ 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거래는 거래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적은 규모의 주문만으로도 가격을 움직이기 쉬운 야간과 주말에 집중됐다.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결과 연구진은 가격 조작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은 트레이더들이 약 두 달 동안 약 820만달러(원화 약 122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해당 수익은 주로 개인투자자 등 일반 참가자들의 손실을 통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연구진은 15분 단위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유사한 거래 패턴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제까지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격을 의도적으로 움직여 결과를 바꾸기가 훨씬 어려워지며, 이는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완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예측시장은 선거나 스포츠 경기처럼 참가자가 결과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사건을 대상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연구진은 금융자산 가격을 대상으로 한 예측시장은 참가자가 베팅 결과를 결정하는 기초자산 자체를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조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문 공동 저자인 싱가포르경영대 시하오 위 조교수는 링크드인에 올린 글에서 “이러한 계약은 구조적인 취약성을 갖고 있다”며 “베팅 결과가 트레이더들이 직접 거래를 통해 움직일 수 있는 기초자산 가격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거래소들이 금융자산을 기초로 한 예측시장 상품을 확대하는 가운데 나왔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이미 주가지수 기반 예측시장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으며, 나스닥도 유사한 상품에 대한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연구에서 제기된 문제가 가상자산이나 폴리마켓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폴리마켓 대변인은 “폴리마켓은 여러 독립적인 가격 오라클(oracle)을 통해 데이터를 집계해 정확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조작 가능성을 부인하면서도 “향후 1년 안에 일부 시장의 결제 방식을 단일 시점 가격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의 평균 가격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시장의 건전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진은 논문에서 관찰된 비트코인 거래가 실제로 폴리마켓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참가자들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직접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거래 의도 역시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업체 올리움(Allium)의 리서치 총괄 엘턴 셰둘라는 해당 연구가 가격 조작과 일치하는 정황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패턴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더 어려운 문제는 바이낸스에서 가격을 움직인 트레이더와 폴리마켓에서 수익을 거둔 지갑이 동일한 주체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마켓의 5분 비트코인 시장은 특정 거래소 가격이 아니라 여러 오라클이 수집한 가격 데이터를 이용해 결제된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연구 기간 동안 최종 결제 결과가 바이낸스 가격과 약 85% 일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바이낸스 거래는 실제 결제 가격을 추정할 수 있는 유용한 대리 변수(proxy)로 활용됐다. 연구진은 거래 의도를 직접 확인한 것이 아니라 거래 패턴을 근거로 조작 가능성을 추론했다.
바이낸스 측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로서 가격 발견(price discovery)에 기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바이낸스는 자체 플랫폼에서 시장 감시, 주문 흐름 모니터링, 시장 조작 방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외부 플랫폼이 어떤 오라클이나 결제 방식을 사용하는지는 통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폴리마켓의 모든 거래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록되기 때문에 최근 다양한 학술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번에 확인한 취약점이 폴리마켓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래 가능한 자산 가격을 기초로 하는 다른 예측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대변인은 “이번 연구는 상품 설계와 시장 감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면서도 “우리의 예측시장 상품은 단일 자산이 아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기초로 하며 미국 증권 규제 체계 안에서 운영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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