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음주 문화가 바뀌고 있다. 취할 때까지 마시는 술보다 음식과 함께 가볍게 즐기는 술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다. 소주와 폭탄주 중심의 회식 문화가 약해진 자리를 하이볼, 사케, 화이트와인 등이 나눠 갖는 가운데 독일 리슬링도 국내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지난 28일 서울 청담동에서는 독일 모젤 와이너리 닥터 루젠(Dr. Loosen)의 미디어 런천 행사가 열렸다. 닥터 루젠의 에른스트 루젠 오너가 직접 방한해 리슬링과 코스 요리를 함께 선보였다. 단순 시음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리슬링을 '가볍게 취하는 술'이자 '식사와 곁들이는 와인'으로 소개하려는 의도가 읽혔다.
리슬링은 독일을 대표하는 화이트와인 품종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소비뇽 블랑이나 샤르도네만큼 대중적이지 않지만, 최근 주류 소비 변화와 맞물려 새롭게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는 품종으로 꼽힌다. 알코올 도수가 대체로 11~12%대로 낮은 편인 데다, 선명한 산도와 과실 향을 갖췄기에 맥주나 하이볼과 비교해도 음식과 함께 마시기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른스트 루젠 오너도 이날 리슬링의 낮은 도수와 균형감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알코올 도수 11도라고 하면 '그걸로 어떻게 와인을 만드느냐'고 할 수 있지만, 독일 모젤에서는 포도가 충분히 익어도 11~12도대의 조화로운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소비자들은 점점 더 낮은 알코올 도수의 술을 선호한다"며 "지금은 독일이 웃음을 감추기 어려운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낮은 도수와 높은 산도라는 독일 리슬링의 특성이 최근 음주 트렌드와 맞아떨어진다는 의미다.
닥터 루젠은 200년 넘게 이어져 온 독일 모젤 지역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모젤 강변의 가파른 경사지와 슬레이트 토양에서 자란 리슬링을 중심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특히 블루 슬레이트와 레드 슬레이트 토양의 차이를 와인에 담아내는 점을 강조한다.
이날 행사에서도 루젠 오너는 블루 슬레이트를 발레리나에 비유해 "핵과일 풍미가 두드러지고 우아하고 섬세한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레드 슬레이트를 두고는 '마운틴 클라이머'라며 "미네랄이 강하고 구조감이 느껴지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와인 시장은 팬데믹 기간 급성장한 뒤 조정기를 겪고 있다. 전체 와인 수입액은 줄었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화이트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카테고리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액은 약 4억3428만 달러로 전년(약 4억6211만 달러) 대비 약 6% 감소했다. 화이트와인 수입액은 전년 대비 16.3% 급증한 1450억원을 기록했다. 화이트와인의 시장 점유율도 18%에서 26%로 크게 상승했다.
루젠 오너는 이러한 변화를 기회로 보고 있었다. 그는 "아직 리슬링에 대한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낮은 도수와 산도, 음식 친화성이라는 장점이 뚜렷하다"며 "독일에서는 일상적으로 즐기는 술인 만큼 한국에서도 가볍게 즐기는 미식 와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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