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손갤러리 이안리 개인전
통영서 주운 선박 잔해들을
재조합해 새로운 형태 창조
'물과 뭍' 연작 등 20여점 전시
작가 이안리(41·사진)는 한때 통영 주민들 사이에서 '미친놈'이라 불렸다. 해안가를 돌며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파도에 휩쓸려와 깨지고 부서진 파란색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FRP) 어선의 파편과 잔해물들을 집중적으로 주웠다. 어부들과 안면을 튼 뒤 "이런 폐기물로 작품을 만들어 홍콩 아트바젤에도 출품한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주민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후 한 어부는 직접 잔해물을 한 망태기씩 모아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의 결실을 선보이는 이안리의 개인전 'After the Hull(선체 이후)'이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타원형 회화 3점과 150호 대형 캔버스를 포함한 모래 회화 5점, '물과 뭍' 연작 13점, 드로잉 작업이 관객을 만난다.
선체(hull)는 배의 구조물로 작가는 이를 '배 껍질'이라 칭한다. 수명을 다해 버려진 어선은 바닷속에서 구르며 페인트가 갈라지고 철이 녹슬어 새로운 표면을 얻게 된다. 그 표면에 따개비와 미생물, 갯지렁이 등이 붙어 서식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서울 작업실로 가져와 햇볕에 말리고 이물질을 파내어 소독한 뒤 책상에 배열해놓는다. 때로는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옻칠을 입히기도 하고, 아크릴 물감에 모래를 섞어 색을 입히기도 한다.
작가는 부서지고 잘린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고 다른 파편과 비교하며 이리저리 조합해 형태를 만든다. 그는 "조각들을 작업실에 펼쳐놓고 무작위로 조합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형상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자연이 반쯤 완성한 조각에 작가가 마지막 터치를 더하는 셈이다. 그는 이 과정을 '인양'이라 부른다.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행위이자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형상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리는 예술적 행위다.
전시장에 걸린 '물과 뭍' 연작은 자연의 흔적과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단순한 형태 속에는 다양한 인간의 몸짓과 삶의 모습이 스며 있다. 특히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여인 형상을 한 작품은 친근하고 정감이 넘친다. 화가 장욱진이 추구했던 천진무구하면서도 단순한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추상적인 모래 페인팅으로 독자적인 질감을 창조한 작가는 이번에도 특유의 '꼬질꼬질'한 매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작가는 "때가 낀 하얀색은 내가 입던 옷을 걸어놓은 느낌이라 익숙해서 좋다"며 "사연이 많이 묻어 있는 '하얀 더러움'이 내 작업의 방향"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유품 정리 현장을 찾아다니며 오래된 물건을 수거한다는 그는 "옛날 물건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며 "오래된 재료는 와인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풍미가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빈티지 취향은 어린 시절 명동에서 음악 카페를 운영한 부모의 영향으로 형성됐다.
전시장 한쪽 창가석에는 작가의 20년 치 드로잉 노트가 쌓여 있어 관람객들이 직접 들춰볼 수 있도록 했다. '식물집사'이기도 한 작가가 씨앗, 잎, 꽃 등을 세심히 관찰하고 연필 선을 수없이 반복해 그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통영에서 주운 낡은 의자와 절에서 샀다는 긴 의자 등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소품들도 작가의 남다른 '수집광'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전시는 7월 25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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