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뜻모아 해군본부 전달
숭고한 정신 선양 지속 전개
“바다 건너 진중에 해가 저무는데(日暮轅門渡海來), 군사는 적고 형세 다급하니 이네 삶 애닯도다(兵孤勢乏此生哀). 임금, 어버이께 은혜와 의리 갚지 못하니(君親恩義俱無報), 원한이 시름겨운 구름에 맺혀 풀길 없구나(恨入愁雲結不開).”
남구만(1629~1711)의 <약천집>에 실린 녹도만호 이대원(1553~1587)이 죽음을 앞두고 피로 쓴 절명시다. 임진왜란 발발 5년전인 1587년(선조 20) 음력 2월, 왜적이 여수 앞바다를 침범한다. 정해년에 벌어진 이 전쟁을 흔히 ‘정해왜란’이라고 한다.
이대원은 첫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지만 이를 시기한 전라좌수사 심암의 견제를 받는다. 곧이어 대규모 왜군 선단이 쳐들왔지만 심암이 의도적으로 군사를 내주지 않아 이대원은 손죽도에서 사흘간 결사항전으로 적에 맞서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히 순국한다.
조선 조정은 그의 충절을 기려 충렬공 시호를 내렸다. 이대원 장군은 평택시 포승읍에서 출생했다.
평택시(시장 정장선)는 정해왜란의 영웅 충렬공 이대원 장군의 숭고한 호국 정신을 기리고 국가 안보 의식을 북돋우기 위해 시의회 및 관내·외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해군 차기 주력함정에 ‘이대원함’ 명명을 건의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공동 건의에는 평택시와 평택시의회 뿐만 아니라 장군의 사당(쌍충사)이 있는 전남 고흥군의 ‘녹도진 쌍충사 모충회’, 장군의 본관인 ‘함평이씨 대종회’ 등이 대거 동참했다.
당시 이대원 장군과 군사들이 보여준 결사항전은 왜군에게 전라도 진격이 불가능함을 각인시켜 침략 경로를 변경하게 만든 위대한 전략적 승리였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 조정은 전라좌수영의 함대와 전력을 대대적으로 보강하게 되면서 훗날 부임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방어체계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시는 평택이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소재한 대표적인 대한민국 안보·국방 도시이지만 정작 지역 출신의 대표적인 호국 무장의 이름이 명명된 주력함정이 없어 지역사회 내에서 아쉬움과 염원이 지속돼 왔다고 설명했다.
정장선 시장은 “이대원 장군의 군인정신은 시대를 초월해 오늘날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에게도 큰 귀감이 된다”며 “장군이 목숨 바쳐 지켰던 남해 바다를 ‘이대원함’이 돼 다시 누빌 수 있도록 해군 측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한다”라고 했다.
이대원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확충사’와 묘역, 신도비는 경기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돼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보존돼 있다. 시는 장군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국민에게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다양한 선양 활동과 문화재 정비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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